[진료실 풍경] 왕진 가서 무좀 치료하고 올 때도 있지요

입력 2021-08-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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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가정의학과 전문의

왕진(방문진료)을 나가면 가족 보호자들이 유난히 피부 질환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호자들은 환자의 신체 안에서 진행되는 변화와 문제를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피부색, 발톱무좀, 상처, 모발 등에 더 눈길을 주게 마련이다.

왕진을 처음 나가던 시기에는 나도 이런 호소들에 말려들고 말았다. 간단히 청진기만 들고 나간 왕진. 초보 왕진의인 나도 환자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알아채지 못할 때가 많았다. 암이 전이되고 있는지, 신장기능이 나빠지고 있는지 대체 알 수가 없지 않았겠는가.(이런 문제들은 초음파를 들고 왕진 다니는 지금도 잘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자연히 눈에 잘 보이는 문제들에 눈이 가게 된다. 혹은 실제로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다른 문제들, 이를 테면 진행된 암, 경제적인 위기, 비위생적인 환경, 가족들의 방임 등에서 애써 눈을 돌리고자 해결할 수 있어 보이는 문제만 나의 리스트에 올렸을 수도 있다. 왕진씩이나 가서 아무것도 처치한 게 없을까 봐 겁이 나서, 보호자가 제기한 호소들을 손쉬운 문제랍시고 덥석 물었을 수도 있다.

조금씩 왕진이 몸에 익어가기 시작했을 때는 보호자의 ‘표피적인 호소’에 말려들지 말자며 다짐했다. 얼굴에 뾰루지가 어쩌고, 모발이 푸석하네 저쩌고 하는 호소들이 조금 피곤해졌고, 속으로 한숨과 함께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아니, 보호자분의 어머니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요. 뇌경색 후유증으로 걷지 못하시는데 발톱 모양이 이상한 게 무슨 상관이에요?’ ‘여러분들의 아버지는 비듬이 문제가 아니라 암이 문제라고요.’

이 상황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없는데, 기껏 지루성 피부염에 사용할 샴푸를 추천하는 것이 시간낭비이자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기만이라고 여겨졌다. 입밖으로 종종 소리내어 얘기할 때도 있었다.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라고.

왕진도 구력이 쌓이니 조절이라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요즘은 보호자가 호소하는 임상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증상에 과도하게 몰입하지도, 무관심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딱 적정한 정도의 관심을 표명하는 것, 쉽지는 않지만 필요하다. 그래야 보호자인 당신의 걱정에도 가 닿기를 원하는 내 마음을 알려줄 수 있으니까. 사소해 보일지라도 돌보는 이의 호소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의사-보호자 관계를 넘어 원팀이 될 수 있으니까. 나는 왕진을 가서 무좀을 치료하고 오기도 한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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