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레디 고

입력 2021-08-1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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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 고’는 보통 촬영에 들어갈 때 감독이 내는 슛 사인으로, 연기행위의 개시와 촬영의 시작을 알리는 단어다. 영화 촬영을 할 때 나를 가장 흥분시킨 단어는 바로 이 ‘레디 고’였다. 너무나 힘든 영화 제작 준비 과정이 이제 끝났다는 신호탄이기 때문.

창업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준비다. 시장을 몰랐다는 게 창업의 중요한 실패 원인으로 손꼽히지만, 사실은 얼마나 준비가 돼서 창업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수년간 지켜본 대부분 사례가 준비 없는 창업은 언젠가 반드시 망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제품이 좋다는 지인의 권유로 백화점 매장부터 덜컥 열게 된 A 대표. 하지만 곧 트렌드는 바뀌었고 제대로 된 창업의 계획 없이 제품만 믿고 출발한 A 대표는 제품에 하자가 발생하면서 바로 나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대기업에 근무하다가 동업의 좋은 기회를 놓치기 싫어 사업에 뛰어든 B 대표. 얼마 안 가 동업자의 배신으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실패의 길로 내몰리게 된다. 내 사업의 운명이 남의 손에 달려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최고의 기술이란 확신으로 사업을 시작한 C 대표. 업계의 견제와 경쟁 기술의 출현으로 제대로 된 점검 없이 사업을 점점 더 확장하다가 어느 순간 막다른 폐업의 상황에 부닥쳐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손쉽게 정부 지원과 투자를 받아 멋있게 사업을 시작한 다른 청년 창업가들을 보면서 취업도 못 한 채 자신만 뒤처진 듯한 자격지심에 시달리던 명문대 출신 D 대표. 불현듯 떠오르게 된 아이디어로 바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고 계속 승승장구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D 대표의 서비스에 한때 환호했던 고객은 얼마 가지 않아 바로 돌아섰고 장기적 비전보다 당장 수익 배분에서 의견이 갈렸던 팀은 결국 와해됐다. 세상은 반짝 아이디어보다 인생의 경험이 밴 긴 안목의 설계가 중요하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된다.

결정적 계기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결정적 ‘기회’와 ‘준비’는 마치 동전의 양면 같다. 중요한 건 준비가 혹 부족한 것 같더라도 ‘이번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확신과 타이밍에 대한 절실함이 있어야 하며 혹 이번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리스크에 대한 판단을 잘 해야 한다. 대부분 준비가 부족한데도 실행하는 경우는 리스크 대신 성공만 보기 때문이다. 가정해 본 최악의 리스크가 기회의 요인보다 훨씬 크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면 시작하지 않는 게 맞다. 그리고 자신의 갈망보다 스타트업을 하는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가 입게 될 피해의 무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이번엔 실패하더라도 다음의 기회가 있다. 그만큼 이 사업을 하는 데에 대한 철학적 가치가 명확해야 한다. 그리고 결과에 따른 해결책은 상비약처럼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한번 실패했을 경우 재기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실패의 원인으로 모두 준비가 부족했던 탓이라고 손꼽았던 대표들은 ‘확신을 가지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라’,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부족한 부분을 직접 공부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해야 했다’, ‘디테일하지 못한 곳에 악마가 있다’ 등 뼈아픈 자평을 내놓았는데, 그중 가장 잊지 못할 자평은 ‘무엇보다 가장 두려웠던 건, 매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는 탄식이었다.

인간성이 좋고 포용력이 넓다고 사업에 성공하는 게 아니다. 단지 글 잘 쓰고 논리 있게 말을 잘한다고 고객이 내 물건을 사 가는 게 아니다. 사업에 있어서 가장 살피고 눈치를 봐야 할 대상은 늘 고객이다.

국가의 수반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대상은 첫째도 국민, 둘째도 국민이다. 국민에게 지금 제일 필요한 게 뭔지, 국민이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헤아려 볼 줄 아는 성찰이 국가 수반에게 제일 필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고민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대통령 후보들이 많다.

한 번 실패해 다시 재기하려는 사업가에게는 그렇게 가혹하면서, 국가 세금으로 치른 대통령 선거에 떨어지고도 철만 되면 다시 대통령 후보로 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당연하다는 듯 국가 세금을 쓰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로 끝도 알 수 없는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이 ‘전염병보다 굶주림이 더 무섭다’고 아우성이다. 온갖 네거티브로 바쁜 대통령 후보들은 도대체 언제쯤 ‘레디 고’를 외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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