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언론은 마이크가 아니다

입력 2021-08-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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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호 정치경제부 기자

정치권을 취재하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자주 느끼는 점은 언론을 ‘마이크’처럼 대하는 태도다. 자신들이 목소리를 내야 할 때에는 언론을 찾지만 숨길 게 있거나 언급을 피하고 싶을 때에는 언론을 피한다. 말 한마디로 호재를 맞기도, 악재에 싸이기도 하는 정치권 환경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받아쓰기’만 바라는 정치인들의 속내가 보여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는 이런 정치인의 회피에 기자들이 푸념하는 정도의 문제였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을 정말 마이크 역할에만 그치게 만들 소지가 다분하다. 주관적인 ‘추정’에 따른 가짜뉴스 판단을 근거로 한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이 골자인데, 기존 사실적시 명예훼손까지 말 그대로 언론을 ‘때려잡는’ 철퇴를 양손에 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철퇴는 특히 제도권 언론에 더욱 매섭다. 손해액 산정에 언론사 매출을 고려하기에 규모가 클수록 배상액은 커지는 구조이다. 정치권에 영향력이 상당한 이른바 메이저 언론사들을 겨냥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대형 마이크’를 쥐고 싶다는 욕망이 엿보인다.

진보 진영에선 언론 위축을 우려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 왔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법리’(chilling effect doctrine)를 논거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위헌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당은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세계 최초의 언론 위축 수단을 얹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동시에 손보자던 기자 출신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도 입을 다물고 있다.

민주당은 항변한다. 고위공직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그러나 되물을 수 있다. 국정농단을 일으킨 최순실(본명 최서원) 씨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배우자와 자녀는 고위공직자이냐고.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내려오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일반인’이 되지 않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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