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김경선 여가부 차관 "사회약자 위한 부처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나"

입력 2021-08-27 06:00 수정 2021-09-0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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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만을 위한 부처' 인식 잘못…가족ㆍ청소년 정책도 큰 비중
자본시장법상 '여성할당제' 여성 아닌 기업 위해 만든 제도
박원순 전 시장 사건 계기로 공공기관 성폭력 근절돼야
탈레반, 여성 차별 인권 침해 우려 커…국제사회 협력해야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차관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차관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7월 7일 성폭력방지법 추진단 출범 브리핑에서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은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된 '여가부 폐지론'과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 김 차관은 울컥하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을 위해 항상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모습은 전파를 타며 화제가 됐다.

김 차관은 최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통해 '폐지론'에 대한 입장을 재차 밝혔다.

그는 "여가부가 폐지되면 미혼모·부, 한부모, 성폭력 피해자 등 어려움에 처한 이들은 어디서 도움을 받겠느냐"며 "정부 부처 중 사회적 약자를 위한 부처는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여가부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ㆍ대변하고 평등과 통합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부처라는 점을 강조할 때 그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지기도 했다.

여가부의 2021년 예산은 1조2100억 원이다. 정부 부처 전체 예산인 558조의 0.2%에 불과하다.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예산 2조8092억 원의 절반 수준이다. 김 차관은 예산이 많고 적음을 떠나 여가부는 사각지대를 메우는, 평등의 가치를 이뤄낼 수 있는 부처라고 소개했다.

그는 "여성 지위가 향상돼서 여가부가 필요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나라 여성고용률은 OECD 평균에도 못 미친다"며 "상장임원비율도 떨어지고 최근엔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입은 아동, 청소년이 많아지고 있는 만큼 여가부의 역할이 점점 더 많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차관은 9월 9일 임기 1년을 맞는다. 고용노동부에서 28년간 기조실장까지 역임했던 그에게 밖에서 본 여가부와 안에서 본 여가부는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또 여성 고용 노동률, 아프간 여성 인권 문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유가족의 행정소송 제기 등 사회 이슈 전반에 대한 김 차관의 생각을 들었다.

다음은 김경선 차관과 일문일답.

- 임기 1년 소감을 묻고 싶다.

"여가부는 여성 관련 일만 하는 곳이 아니다. 한부모, 미혼모·부, 다문화 등의 업무가 늘어나고 있다. 청소년 업무도 많다. 특정 대상을 위주로 일을 하니 정책의 효과가 직접적으로 전해진다. 피드백도 빠르고 보람도 크다. 다만 요즘 워낙 민감한 이슈가 많다. 성평등 가치 확산이 부처의 임무인데 성별 문제에 대해 의견이 다양하다 보니 민감한 부처라고 생각된다."

- 밖에서 보셨을 때와 직접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여가부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인가.

"밖에서는 '여성가족부'라고 하면 여성의 권익을 위한 부처이고, 직원들이 여성 권익 운동가, 신장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막상 와보니 그게 아니었다. 양성평등 채용목표제의 혜택 받은 이의 75.7%가 남성이었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또 여가부 직원이 277명인데, 58명이 청소년국에 있다. 21%에 달한다. 교육 외에 청소년의 사회 참여, 위기 청소년 보호 등을 여가부가 하고 있다. 부처 명칭에 '청소년'이 들어가 있지 않으니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

- 예산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가족' 업무다. '여성'만을 위한 부처라고 인식하는 이들이 많은데.

"명칭 때문인 것도 이유일 것이다. 우리 부처가 처음 발족할 당시 여성들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열악했다. 그래서 우리 부 정책의 주안점이 '여성의 권익 향상'이었고, 깊이 매진했다. 성과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여가부의 가족 정책도 복지 정책이 아니다. 헌법에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의 원칙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돼 있다. 양성평등의 원칙이 가족생활에서 가장 기본이자 핵심이다. 물론 열악하고 어려운 위치에 있는 한부모를 지원하기도 하지만, 양성평등을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게 여가부의 고유 영역이다. 성별을 막론하고 잘못된 부분을 적극적으로 찾아낼 것이다."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차관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차관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 1인 가구, 비혼 동거, 한부모, 청소년 부모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자는 내용이 담긴 '4차 건강가정기본법'이 발의됐다. 우리 사회 분위기와 맞지 않는 급진적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왜 급진적이라고 보는지 모르겠다. '건강가정기본법'이라는 법령명을 보면, '안 건강한 가족도 있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2004년 법 시행되면서 바로 이름부터 배제적이라며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현장에서 있었다. 전국 240여 개 상담센터에서 부모와 자녀, 부부 간의 갈등에 대한 상담을 하고 교육을 한다. 그렇다면 지원 대상이 누가 돼야 하는가. 현행법은 '혼인, 입양, 혈연'으로만 돼 있다. 너무 많은 가족이 배제된다. 위탁가정도 제외된다. 재혼 가정의 경우 아버지가 돌아간 후 계모와 자녀가 남겨졌을 때도 지원받지 못했다. 혈연, 혼인, 입양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너무 협소한 가족 개념을 갖고 '이게 가족이다!' 하는 건 맞지 않다. 기본적인 지원 서비스를 받을 대상을 정하는데 좁게 갈 필요는 없다. 젊은 세대의 70%는 혼인, 입양, 혈연이 아니어도 가족으로 본다는 데 동의한다. 생각이 바뀌고 있는데 법이 못 따라가는 것이다. 법이 바뀌면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적 인식이 바뀔 것이다."

- 노동정책 전문가로서, 여성 노동자가 어떤 환경에 처해있다고 보는가.

"노동시장 문제는 말씀드리고 싶은 게 많다. 여성 고용이 해소돼야 우리나라 고용의 문제가 해소된다. OECD보다 전체적 고용률이 떨어진다. 여성 고용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본만 해도 여성 고용률이 70%가 넘는데, 우리나라는 57~58% 수준이다. 질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사회로 가고 있다. 여성 고용이 증가하지 않으면 생산 가능 인구 감소가 빨리 도래할 수밖에 없다. 시뮬레이션해보면, 여성 고용이 높아지면 생산 가능 인구 감소가 더 서서히 나타난다. 이미 출산율이 떨어진 상황에서 태어난 사람의 반이 놀고 있으면 안 되지 않나. 기혼 여성의 17.6%가 경력단절을 겪고 있다. OECD하고 가장 큰 격차를 보이는 게 35~39세 구간이다. OECD는 72.4%인데 한국은 60.5%다. 맞벌이 부부와 외벌이 부부 가사 노동 시간을 비교하면 재밌는 결과가 나온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여성은 3시간 7분 일하고 남성은 57분 일한다. 남성 외벌이의 경우 남성은 55분, 여성은 5시간 41분 가사 노동을 한다. 여성의 외벌이의 경우에도 여성이 더 많은 시간 동안 가사 노동을 한다. 여성은 2시간 36분, 남성은 1시간 59분이다. 적극적으로 개선돼야 하는 부분이다. 또 노동시장 체질 개선도 필요하다. 업종별로 분절돼 있다. 정보통신업 종시 비율을 보면, 여성은 20대 비율이 34.2%였다가 40~50대에 17%로 떨어진다. 하지만 숙박음식점의 경우 2030대 34.9%였던 여성 비율이 4050대 67.5%가 된다. 업종간의 벽을 허물고 절대 기준, 최소 기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 최근 자본시장법상 '여성할당제'를 둘러싼 논쟁이 있다.

"자본시장 특례법이 여성을 위해 시행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기업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요즘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이하 ESG)가 화두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CEO는 여성 임원 두 명 이상 안 뽑으면 자산을 투자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법 조문에 보면 '여성 1명 이상'이라고 돼 있지 않다. 특정 성만으로 만 구성되면 안 된다는 내용을 담는다. 다양성이 있어야 의사 결정할 때도 기업의 이익을 높이는 결정이 나온다. 맥캔지 발표에 따르면, 성별 다양성이 최상위인 그룹의 영업 이익이 25%가 더 높았다. 우리나라도 여성경제 활동률을 높이면 GDP가 14.4% 늘어난다고 골드만삭스에서 말했다. 정부가 법을 통해 이끄는 건 제도화되지 않으면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 고의적인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들에 대한 제재를 세부적으로 규정한 법안이 시행 중이다. 한계에 대한 지적도 있는데.

"이번 법 제정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네 가지 제도를 함께 연결해서 봐야 한다. 제도들이 보완적으로 작용했을 때 효과가 더 클 것이다. 다만 '감치명령을 받고도 이행하지 않는 자'라고 돼 있다. 감치명령까지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린다. 양육비 이행 명령을 받고 90일이 지나도 따르지 않을 때 감치명령을 신청하게 돼 있다. 기간을 30일로 줄이는 것도 법원과 협의하고 있다. 우선 법 시행이 본격화된 후 법률적으로 요건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차관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차관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이 인권위가 성추행 사실을 인정한 것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진상조사를 한 입장에서 어떤가.

"박 전 시장 측의 소송 자체는 '2차 가해'라고 보진 않는다. 피해자 측 변호인인 김재련 변호사도 이런 입장이다. 오히려 소송을 통해 정확하게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피해자를 공격하는 건 2차 가해다. 피해자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잘못했다고 해선 안 된다. 또 이미 인권위에서 성희롱에 해당된다고 발표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공공기관 내 성희롱과 성폭력이 근절돼야 한다. 고위직, 기관장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고위직은 예방 교육을 일반 구성원과 따로 하고 있다. 사건이 생긴 후 뭘 하는 건 맞지 않다. 예방이 중요하다. 양성평등조직혁신추진단 발족한 것도 예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각 기관이 성평등 조직문화에 대해 자가진단을 한 후 저희는 컨설팅을 하겠다."

- 탈레반의 여성 차별과 인권 침해 문제가 우려되고 있다.

"과거 탈레반 집권 시 여성의 사회활동과 교육기회 제약, 부르카 착용 강요 등 심각한 인권 침해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번 정권 교체로 인해 여성 차별과 인권 침해가 재현될 우려가 너무나도 큰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사회에서 진전돼 왔던 성평등이 심각하게 후퇴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인권 존중과 성평등의 가치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퇴색하지 않도록 유엔여성기구(UN Women) 등 관련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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