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알 권리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다. 1988년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알 권리를 "정보에의 접근ㆍ수집ㆍ처리의 자유"라고 규정했다. 국민이 공적 성격의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국가가 방해해서는 안되며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취지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국민의 알 권리는 주로 언론사를 통해 충족됐다. 1998년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이 시행되면서 모든 국민은 정부와 공공기관이 보관하고 있는 문서의 열람과 복사를 청구할 수 있게 됐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엔 공개가 제한된다.
국민의 정보공개청구권을 폭넓게 보장하기 위한 제도는 마련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거대 권력이 입맛대로 국민의 눈과 귀를 조정하는 셈이다.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언론중재법) 본회의 통과를 서두르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거센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6일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정보공개포털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정보공개청구에 따른 중앙행정기관의 원문공개율은 45.3%이다.
시·도 3급 이상, 시·군·구 부단체장 이상의 결재문서는 정보공개법에 근거해 국민이 청구하지 않더라도 공개하게 돼 있다. 원문공개율은 등록된 문서 중 원문 공개가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중앙행정기관의 원문공개율은 2017년 43.9%, 2018년 47.1%, 2019년 44.7%, 2020년 49.3% 등 최근 4년간 50%를 밑돌았다. 기밀 정보가 많은 외교·안보, 수사·조사·교정 부처를 제외해도 원문공개율은 54.7% 수준에 그친다.
정부와 공공기관들은 정보공개를 청구하더라도 여러 이유로 거부하거나 일부만 공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비공개 통지 때 사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 등은 비공개 근거를 주로 정보공개법 9조 5항과 7항을 제시된다. 5항은 ‘감사·감독 등에 관한 사항이나 의사결정 과정 또는 내부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 7항은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을 비공개 사유로 명시했다.
정부 등은 이를 넓게 해석해 정보 비공개 결정하고, 이를 통지할 때 이유를 세세하게 알리지 않는 등 국민의 알 권리를 가볍게 여기는 경우도 많다.
또 정보공개 청구인의 요청이 불분명하다거나 민감한 정보를 적절한 이유 없이 비공개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공공기관은 법원이 정보 공개 결정을 내려도 이행을 미뤄 재차 소송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성순 법무법인 한일 변호사는 “정보공개청구제도가 미흡한 부분이 많다”며 “정보공개법이 ‘원칙 공개’로 돼 있으나 ‘원칙 비공개’로 운영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정보공개 청구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언론중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권력 기관의 견제와 감시 기능이 급격히 축소돼 민주주의가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윤우 IBS 공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민주주의의 가장 근간이 되는 것 중 하나가 표현의 자유”라며 “개정안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매우 크고 거기서 발생하는 국민의 알 권리 침해 등 악영향이 굉장히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짜뉴스를 막을) 다른 방법도 있는데 왜 이러는지 의문”이라며 “언론중재법이 개정된다 하더라도 헌법소원이 끊임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