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지금] 위기관리능력 떨어진 일본 정부

입력 2021-09-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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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유지(세종대 대우교수, 정치학 전공)

8월 15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하면서 외국인들과 대피를 원하는 아프간 주민의 해외 탈출이 시작됐다. 이 와중에 한국은 교민과 한국에 협력해 준 아프간 사람 총 390명 구출 작전에 성공했으나 일본은 일본인 1명만 구출하는 데 그쳐 탈출작전에 크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 원인을 보면 우선 일본은 작전을 너무 늦게 시작했다. 한국은 22일 군 수송기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보냈고 23일 카불에 들어가 비밀리에 작전을 전개했다. 그리고 24일 처음으로 언론에 ‘미라클’ 작전을 공표했다. 그런데 일본은 애초 18일까지 민항기를 카불로 보내는 것을 검토하다가 예측할 수 없었던 탈레반의 빠른 침공 소식에 민항기 파견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본 정부가 자위대 수송기 파견을 결정한 시점은 23일 밤이었다. 그러므로 24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일본 자위대가 도착해서 그날 밤에 아프간 카불 공항으로 들어갔다. 일본 측 움직임은 한국보다 하루 정도 늦은 셈이다. 그러나 이 하루의 차이가 26일 이슬람국가(IS)의 테러공격 발생으로 결정적인 차이가 되어 버렸다.

가장 치명적이었던 일본의 실패는 일본인과 아프간 협력자들을 그냥 알아서 공항으로 오게 했다는 데 있다. 일본의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카불공항 안전은 확보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불공항 안에서만 자위대가 활동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것이 일본 자위대법의 한계인 것이다.

자위대는 타국으로 들어갈 때에는 상대 국가가 허락한 범위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게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번엔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카불공항 내에서만 활동할 수 있었다. 바로 일본 정부는 카불공항 밖에서 자위대가 활동을 못 하는 한계 때문에 외교관들에게만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외교관들은 교민이나 자국에 협력한 아프간 사람들을 버리고 이미 해외로 도피해 버린 후였다. 공항에서 일본인과 협력자들 수송 절차는 자위대가 하지만 카불공항까지 사람들을 유도하는 것은 외교관들의 임무인데 그들이 사람들을 버리고 나가버린 상태였다. 물론 외교관들의 대피를 허락한 정부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알아서 공항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탈레반이 만든 검문소에서 제지당해 한 명밖에 공항으로 오지 못했다. 지난달 22일 시점에선 한국도 협력자들에게 알아서 공항으로 오라고 지시를 했지만 26명밖에 도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신속하게 버스를 마련하고, 대사관 직원들이 문자 연락망을 최대한 활용해서 버스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미군이 허락한 사람은 해외로 대피시켜도 된다는 미국과 탈레반 사이의 협정이 있어 한국은 그것을 최대한 이용했다. 그래서 검문소에서 14~15시간을 기다리긴 했지만, 함께 버스를 탄 미군이 탈레반과의 협상을 잘 해서 무사히 검문소를 통과해 공항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작전 ‘미라클’은 명칭 그대로 희망자를 모두 한국으로 탈출시키는 기적적인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한국은 지난달 22일 일단 카타르로 도피한 외교관들이 약속대로 다시 카불로 돌아가 작전을 지휘했지만, 일본은 가장 먼저 외교관들이 빠져나갔다. 그러므로 일본 측에는 카불 현지에서 직접 대피를 지휘하는 사람이 없었다. 멀리 있는 일본 정부가 지휘를 내려도, 공항에 머문 자위대 사람들이 지휘해도 현지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적절한 지시를 내리기는 불가능했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아직 예측 불허의 상태”라고 하면서 사실상 작전 실패를 인정했다.

일본 언론들은 비교적 냉정하게 이 사태를 보도하고 있다. 탈출에 성공한 한국 등의 사례를 들면서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몇 개 보도됐다. 한국이 감동적으로 작전을 성공시킨 점도 니혼TV가 전했다. 김일웅 참사관이 카타르에서 다시 돌아와 현지 직원들과 부둥켜안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책임을 다할 수 있어 기쁘다. 국가의 품격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한 장면이 일본에서 보도됐다.

일본 국민은 이런 보도 기사에 많은 댓글을 달면서 이번 탈출 작전 실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과 똑같다고 개탄하며 화를 내고 있다. 정부가 낙관론만 얘기하고 위기상황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한마디로 현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이 매우 낮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정부를 믿지 말아야 한다”, “믿을 건 자기 자신밖에 없고 알아서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댓글들이 많다.

과거 일본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은 대단히 높았다. 결국 아베 신조, 스가 요시히데로 이어진 우파 정권 9년간이 일본의 위기관리 능력을 후퇴시킨 셈이다. 현재 자위대를 지휘하는 장관이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라는 점도 상징적이다. 아베 형제를 비롯한 우파들이 일본의 위상을 작정해서 떨어뜨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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