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미] "그들은 왜 탈영병이 됐나"…'D.P.'와 징병제의 사회경제적 비용

입력 2021-09-03 17:54 수정 2021-09-0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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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미는 넷플릭스와 왓챠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에 있는 콘텐츠를 통해 경제와 사회를 바라봅니다. 영화, 드라마, TV 쇼 등 여러 장르의 트렌디한 콘텐츠를 보며 어려운 경제를 재미있게 풀어내겠습니다.

▲이병 안준호(정해인 분)는 특유의 눈썰미를 가진 덕에 간부의 눈에 띄어 상병 한호열(구교환 분)과 함께 본격적인 헌병 군탈체포조(D.P.)생활을 시작한다.  (넷플릭스)
▲이병 안준호(정해인 분)는 특유의 눈썰미를 가진 덕에 간부의 눈에 띄어 상병 한호열(구교환 분)과 함께 본격적인 헌병 군탈체포조(D.P.)생활을 시작한다. (넷플릭스)

상사의 얼굴을 아작내고 영창에 갇힌 이병 안준호(정해인 분). 어두컴컴한 영창에 홀로 앉아있는데 박범구(김성균 분) 중사가 찾아온다. 침울한 준호의 표정에 "지구라도 멸망했냐"고 묻는 박 중사. 그가 죄책감에 사로잡힌 이유는 근무 태만으로 술에 절어있다가 쫓던 탈영병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박 중사는 죄책감에 잠긴 준호에게 다시 탈영병을 체포하는 D.P. 보직을 맡긴다. 준호는 그런 박 중사에게 "근데 신우석, 군대에 안 왔으면 탈영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라고 묻는다. 탈영병을 쫓는 헌병 군탈체포조(D.P.)를 통해 군의 부조리를 그리는 넷플릭스 화제작 'D.P.'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탈영이라는 벼랑 끝 선택에 내몰린 병사들과 함께 폭력이 대물림되는 군대 문화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군내 가혹 행위, 가정사 등 제각기 괴로움을 안고 탈영을 저지른 청년들과 그들을 붙잡는 이병 안준호, 상병 한호열(구교환 분)의 이야기를 다뤘다. 예비역 남성들이 시청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느낀다"고 말할 정도로 현실감이 넘친다.

작품은 매화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는 병역법 3조로 시작한다. 자막 이후, 국가의 부름에 억눌린 청춘들의 굴곡진 2년을 펼쳐 보이며 병역 의무를 강제한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에 의문을 제기한다.

▲윤일병 사건이 있었던 2014년을 배경으로 한 'D.P.'는 각종 가혹행위와 폭력이 대물림되는 군대의 문제 상황을 고스란히 담았다. (넷플릭스)
▲윤일병 사건이 있었던 2014년을 배경으로 한 'D.P.'는 각종 가혹행위와 폭력이 대물림되는 군대의 문제 상황을 고스란히 담았다. (넷플릭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모두가 군대에 가야 하는 '징병제'가 사회·경제적으로도 지속 가능한지 의문이다.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출산율이 급감하며 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대 35만 명 수준이었던 20세 남자 인구는 2025년 약 23만, 2035년 약 22만, 2040년 약 15만 명 수준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모종화 당시 병무청장은 저출산 여파로 2032년부터 연간 필요한 현역 자원을 모두 충원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징병제는 기술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현대 전쟁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과거의 전쟁은 이미 역사가 됐다. 현대 군에는 드론이나 스텔스 등 첨단 기술 장비를 운영하고, 사이버 안보에 도움 되는 전문 인력이 움직인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최근 국방부는 2026년까지 직업군인 등 간부 비중을 40%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김두관, 정세균 등 대선 후보들도 앞다퉈 '모병제' 공약 등 군 인력 재편 공약을 내세웠다.

▲'D.P.'시즌 1 6편 에피소드에서 5명의 탈영병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불우한 가정사나 군대 내 가혹 행위 때문에 탈영을 저지른다. (넷플릭스)
▲'D.P.'시즌 1 6편 에피소드에서 5명의 탈영병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불우한 가정사나 군대 내 가혹 행위 때문에 탈영을 저지른다. (넷플릭스)

반면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모병제 전환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많다. 당장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은 상비 병력만 118만 명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군이 질적으로는 우수하지만, 분단 상황 속에서 어느 정도 병사 수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 모병제 전환 후 병사 모집이 사실상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대만은 2018년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꾼 후 병사 충원율이 81%에 머무르고 있다. 일본 자위대 역시 충원율이 77% 정도다. 영국이나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충원이 쉽지 않아 외국인 병사도 모집하고 있다.

OECD 34개국 중에서도 징병제를 유지하는 국가는 10개국이다. 이 중에는 인권 선진국으로 꼽히는 스웨덴과 노르웨이, 핀란드가 포함돼 있다. 이들 북유럽 국가는 러시아의 안보 위협 때문에 징병제를 운용하고 있다.

또 다른 대안으로 여성 징병제도 거론되고 있으나, 반복되는 군내 성폭력 문제 등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또 헌법재판소는 2010년, 2011년, 2014년 꾸준히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한 병역법 규정이 합법이라는 결정을 반복해서 내렸다.

▲지난달 27일 공개된 'D.P.'는 군대 내 폭력과 성추행 등 가혹행위, 강압적 상명하복 문화와 각종 부조리를 예리하게 그려내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넷플릭스)
▲지난달 27일 공개된 'D.P.'는 군대 내 폭력과 성추행 등 가혹행위, 강압적 상명하복 문화와 각종 부조리를 예리하게 그려내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넷플릭스)

징병제와 모병제 계산에서 또 한가지 고려돼야 하는 건 2년간 억눌린 대한민국 청년들의 미래와 가능성이다. 국가가 강제한 의무 속에 청년들의 사회 진출은 지연되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의 가능성은 제한된다. 또 폭력을 대물림하는 폐쇄적인 군대 문화는 학교와 사회 등 부대 밖 곳곳에서도 상명하복식 문화를 전염시키며 우리 사회의 각종 병폐를 낳았다.

군 관계자는 드라마를 보고 과장됐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으나 여전히 군대 내 부조리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모든 일선 군부대가 작품 속 D.P.같지는 않다. 하지만 국방부가 올해 5월 국회입법조사처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군대 내 폭행 및 가혹 행위 입건 수는 지난해 1010건으로 2019년 896건, 2018년 983건보다 오히려 늘었다. 병역 제도를 고민하며 주판알을 두드리는 건 물론, 군의 인권 상황 전반도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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