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D.P.' 와 '82년생 김지영'

입력 2021-09-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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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부 기자

2011년 7월. 공군 모 비행단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첫날 밤, 베개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가 콧구멍을 찔렀다. 베개가 더럽다고, 바꿔 달라고 할 수도 없는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잠을 청하는 것일 뿐. 해가 뜬 뒤 살펴본 베개에는 1982년에 제작됐다는 문구만이 깨끗하게 보존돼 있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디피'(D.P.)는 군대 실상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소설이 그러하듯 드라마 역시 약간의 허구와 과장이 덧대어 있지만 D.P.에 나오는 현실은 누구도 지어낼 수 없는 '원천 스토리' 그 자체다. 선임 기수와 이름을 외우고, 작은 일에도 갖은 조롱과 욕설이 난무하는 모습, 수통도 안 바뀐다는 대사에 공감하는 군필자들이 많다.

D.P.와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닮은 점이 꽤 있다. 남성과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부조리와 불평등이 집약돼 있다. 개인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구조에 절망하는 점까지 꼭 빼닮았다. 물론 두 작품에서 나오는 사례가 한 사람이 모두 겪는 일은 아니다. 모든 남성이 군대에서 구타를 당하지 않고, 모든 여성이 출산과 육아를 강요받지 않는다. 두 작품은 남성과 여성이 겪는 다양한 부조리를 부대와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두 작품 모두 남녀가 처한 현실을 한데 모은 내용이지만 국방부가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국방부는 82년생 김지영을 '2018년 진중문고 목록'에 선정했다. 군 장병에게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알리고 양성평등에 대해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남성으로만 구성된 병사들이 여성의 고충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하지만 D.P. 열풍을 두고 "극한의 가혹 행위가 묘사된 드라마가 외국에서 주목하고 있으니 난감하다", "병영 환경이 바뀌어 가고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국방부 말대로 병영 환경은 개선되고 있다. 1990년도에 비하면 구타는 줄었고 병사들도 일과 이후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자신 있게 내 아들을 군대에 보내겠노라 말할 정도는 아니다. 과거보다 더 나아졌다고 보기 어려운 것들도 여전하다.

올해 고등군사법원의 한 판결문에는 "전투복을 입은 피해자의 우측 무릎에 물을 붓고 전기 파리채를 위에 대고 작동시켜 전기가 피해자의 무릎에 통하게 하는 방법으로 충격을 가하는 행위를 15분에 걸쳐 반복한 것을 비롯하여…"라는 범죄사실이 기록됐다. 아무리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누군가에 의해 폭행과 괴롭힘이 만연한 곳이 군대다. 여성 부사관이 성추행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도 자주 들린다.

국방부가 할 일은 통렬한 자기성찰이다. D.P. 열풍으로 군의 이미지가 나빠지리라 걱정하는 것보다 가혹 행위로 인한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는 장병이 있는지 한 명이라도 더 살펴야 한다. 사고가 나면 감추기 급급한 모습도 변해야 한다. 군기는 엄격하게 유지하고 전력에 방해되는 외부 요인은 차단하되 병영 내 장병 안전은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 구타와 성 추문, 호러물 수준의 괴롭힘으로 젊은이들이 희생당하는 일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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