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위태한’ 엘살바도르의 실험...비트코인 가격은 추락

입력 2021-09-0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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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디지털지갑·ATM 등 기술적 결함으로 혼선
가격 급락하자 부켈레 대통령 “저가매수...150개 추가 구매”
수도 산살바도르서는 대규모 비트코인 반대 시위 열려
쿠바·우루과이·파나마, 비슷한 행보 보일 가능성

▲중남미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의 스타벅스 매장에 비트코인 결제 전용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엘살바도르는 7일(현지시간)부터 가상자산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했다. 산살바도르/로이터연합뉴스
▲중남미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의 스타벅스 매장에 비트코인 결제 전용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엘살바도르는 7일(현지시간)부터 가상자산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했다. 산살바도르/로이터연합뉴스
중남미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법정화폐 인정 첫날인 이른바 ‘비트코인데이’는 극강의 변동성을 맛본 하루로 마무리됐다. 엘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 디지털 지갑의 기술적 결함 소식이 나온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급락했다.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대규모 비트코인 반대 시위가 일어나는 등 엘살바도르는 세계 첫 비트코인 법정화폐 채택 첫날인 7일(현지시간) 진통을 겪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엘살바도르는 이날부터 비트코인을 달러와 같은 ‘진짜 돈’으로 채택했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고팔 때, 세금을 낼 때도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6월 초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1 콘퍼런스’에서 비트코인 법정통화를 추진한다고 밝힌 지 90여 일 만의 일이다.

하지만 도입 직후부터 말썽이었다. 부켈레 대통령은 이날 새벽 트위터에 “치보는 서버 용량이 급증하는 동안은 작동이 멈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가입과 함께 30달러(약 3만5000원)어치 비트코인을 준다던 엘살바도르 정부 공식 디지털 지갑 ‘치보(Chivo)’는 오전 내내 가입이 되지 않는다는 후기가 소셜미디어에 도배되며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치보는 ‘쿨(Cool)함’을 뜻하는 엘살바도르 현지 은어다.

비트코인을 달러로 입출금할 수 있도록 엘살바도르 전역에 설치된 200대의 ATM은 달러화를 입금한 후 입금 확인이 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다. 치보와 ATM 관련 문제는 정오가 다 돼서야 해결됐다.

기술적 결함으로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데이’가 어수선한 모습을 보이자 가상자산(가상화폐) 시장은 요동쳤다. 엘살바도르의 공식 법정화폐 도입 직전 5만2000달러대까지 올랐던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한때 4만3000달러 밑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장중 낙폭은 17%(24시간 전 대비 기준)에 달했다. 최근 상승세에 대한 차익실현 매물 폭탄까지 겹친 영향이었다.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7월 이후 약 75% 상승했다.

가격이 급락하자 부켈레 대통령은 저가 매수에 나서 추가로 150개의 비트코인을 사들였다고 밝혔지만, 낙폭을 줄이는 데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이날 추가 구매분을 포함해 약 550개 비트코인을 보유하게 됐다.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7일(현지시간) 비트코인 법정화폐 채택을 반대하는 시위 참가자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산살바도르/EPA연합뉴스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7일(현지시간) 비트코인 법정화폐 채택을 반대하는 시위 참가자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산살바도르/EPA연합뉴스
산살바도르 거리에서는 비트코인 반대 시위가 대규모로 열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비트코인 법정화폐 채택에 반대하는 행진을 했으며 경찰과 대치했다. 시위대는 대법원 앞에서 타이어를 태우고 폭죽을 터뜨리기도 했다.

비트코인 도입 전부터 엘살바도르 내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현지 호세시메온카냐스대학이 최근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3분의 2가 비트코인 법이 폐지돼야 한다고 답했으며 70% 이상이 미국 달러 사용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엘살바도르에서는 최근 장기집권 포석을 마련한 부켈레 대통령에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진 상황이었다. 부켈레는 지난 5월 법무장관과 대법관을 해임한 끝에 자신의 대통령 재선을 허용하는 판결을 끌어내 나라 안팎의 거센 비난을 샀다.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산살바도르의 한 식료품 가게 주인은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위조지폐를 받는 위험을 막아준다”며 “가격 변동성이 위험하다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위기를 볼 때 나는 기회를 본다”고 긍정했다.

비트코인 지지자들과 투자자들은 도입 첫날 혼란에도 여전히 엘살바도르의 실험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비트코인이 12년 역사상 가장 큰 시험을 받게 됐다”며 “가상자산 시장은 엘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이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수수료 등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엘살바도르의 실험이 성공하면 이를 뒤따를 국가들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미 쿠바는 가상자산 거래가 늘어나자 이를 합법화해 규제 틀 안에 넣으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파나마와 우루과이 등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비트코인 최근 1개월간 가격 추이. 단위 1000달러. 7일(현지시간) 저점 4만2921.27달러. 출처 코인데스크
▲비트코인 최근 1개월간 가격 추이. 단위 1000달러. 7일(현지시간) 저점 4만2921.27달러. 출처 코인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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