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허리띠 졸라 맬 때, 국민은 빚내서 투자했다

입력 2021-09-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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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경기상승 시 레버리지 베팅 가계의 투자
자산 변동성 키워 생산적 투자 감소시켜 소비 위축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연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향후 가계부채 리스크의 크기와 속도가 불확실성에 놓였다. 가계부채 총량이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질적인 측면에서도 부실 위험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부채가 급등한 배경에는 개인의 강한 투자 의욕이 자리잡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통상 경기가 상승국면에 진입할 때 기업의 생산적 투자 의욕이 증대되면서 가계의 자금 수요를 압도한다. 한국 경제에선 경기가 상승국면에 진입할 때 기업보다 가계의 투자 욕구가 더 강해 가계부채가 급격히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8일 예금보험공사가 발표한 ‘가계부채의 구조적 문제’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신용과 가계신용의 합인 민간신용에서 가계신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40여 년간 약 30%포인트(p) 상승했다. 민간신용 중 가계신용의 비율은 1981년 20% 정도에 불과했으나, 2019년 50%까지 상승했다. 가계신용이 기업신용보다 더 급속하게 증가한 것이라는 의미다.

가계신용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레버리지를 일으켜 자산 투자를 하려는 국내 가계의 특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경제 순환 모형에서 투자의 주체인 기업은 호경기에 적극적으로 자금 차입을 늘려 투자에 나서고, 불경기에는 자금 차입을 줄이고 투자를 조절한다. 반면 소비의 주체인 가계는 소득이 증가하는 호경기에는 저축을 늘려 차입을 줄이고, 불경기에는 차입을 늘려 소비를 하고자 한다. 단순하게 말해 가계신용비율은 경기역행적인 특징을 갖는다.

한국 경제에서는 경기가 상승국면에 진입하면, 기업들의 생산적 투자 의욕보다 가계들의 레버리지 투자 욕구가 더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기관들이 담보가치가 높고 위험도는 적은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의 비중을 적극적으로 늘리면서 이자율이 오히려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낮아진 이자율은 경기가 상승할 때 주가와 주택 가격을 즉각적으로 급상승시키며 과도한 변동성을 초래한다. 이후 금리 조정이 있을 시 주가는 과도하게 하락했고 주택가격은 안정 국면에 진입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대표적인 자산 시장인 주식·주택 시장을 분석하면 경기가 상승국면으로 진입할 때 미국 주식시장이나 한국 주식시장 모두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이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p 증가할 때, 미국의 주가는 즉각적으로 2.5%p 증가한 후 완만하게 충격반응이 사라졌다. 한국의 주가는 즉각적으로 3.5%p 증가한 후, 4분기 후에는 오히려 3.5%p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가격상승률의 경우, 경기가 상승국면으로 진입할 때 미국 시장에서는 별다른 충격반응이 없었다. 한국 시장에서는 즉각적으로 상승률이 올라 2분기가량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효과가 관측됐다.

심승규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부교수는 “가계부채 관련 양적 팽창의 문제보다는 가계의 비생산적 자산투자 욕구가 기업의 생산 투자 욕구와 경합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구조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며 “가계신용과 기업신용을 합한 민간신용 대비 가계신용비율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시장에서는 경기역행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시장에서는 경기순행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 같은 가계의 투자 욕구는 자산 가격의 변동성을 확대하면서 생산적인 투자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신용의 담보가치 의존도가 높아 오히려 생산활동을 촉진할 수 있는 신용카드 사용, 자동차 등 기타 내구재 소비를 늘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에 따라 늘어나야 하는 판매신용은 2007년 이후 10년 넘게 여전히 가계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관련 가계신용이 1700조 원을 넘길 때 판매신용은 올해 2분기에서야 처음으로 100조 원을 갓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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