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대한민국 외교,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입력 2021-09-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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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동국대학교 석좌교수(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개발도상국에 대한 우리 외교의 중요성이 나날이 증대되고 있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가난한 국가에 식량을 지원해 인류애를 실천한다. 코로나 19사태로 식량 부족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코로나 사태로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 49개 국가의 약 2억7000만 명이 기아에 처할 것으로 본다. 최근 외교는 식량과 기술 중심의 농업외교를 넘어 각종 컨설팅도 활기를 띤다. 경제발전 전략, 교육과 인력지원 등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중장기적으로 매우 유익한 방안이나 때로는 적용 가능성이 없거나 예산만 낭비하는 사례도 있다. 농업 발전이 시급한 개발도상국에 정책 컨설팅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1986년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유학할 때의 이야기다. 농업정책을 강의하는 글렌 존슨(Glenn L. Johnson) 교수가 한국 농업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어 놀랐다. 알고 보니 미국 농무부 지원으로 한국 농업에 대한 종합적 컨설팅을 한 것이다. 미시간 주립대학의 존슨, 조지 로스밀러(George Ed. Rossmiller) 교수가 중심이 돼 한국 농업 생산, 인구, 곡물 등을 종합 분석해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KASS 모델(Korean Agriculture Sector Study)로 이름 지은 한국 농업 분석 보고서는 1978년 ‘Agricultural Sector Planning’이라는 책으로 발간됐다. KASS 보고서는 품목을 넘어 산업을 입체적으로 보는 눈을 길러 줬고 우리 농업정책 수립에 큰 도움이 됐다. ‘개방이냐 보호냐’ 이분법적 논란에 치중할 때 미국 전문가는 개방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보고 산업이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줬다.

그간 농업외교는 식량과 기술 지원 중심이었고 성과도 많았다. 대한민국의 식량 증산 성공 사례와 노하우에 대한 후진국들의 러브콜도 많다. 6·25 전쟁으로 세계 최빈국 수준의 가난한 대한민국이었고 ‘식량 원조를 받는 국가’였다. 통일벼 등 벼 종자 개발과 기술혁신으로 단기간에 식량 자급을 했고 이제는 식량 ‘원조를 주는 국가’로 전환했다. 2018년부터 해마다 5만 톤의 쌀을 아프리카, 중동 등 여러 나라에 원조하고 있다. 식량 지원을 통해 우리나라의 국제 위상도 높아진다. 국격이 높아지고 식량 주도권을 행사할 여건도 조성된다.

거대 자유무역 체제인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이 2020년 체결됐고, 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서울 선언문’도 발표됐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지난 6월 영국에서 개최된 G7회의에서도 코로나 극복과 ‘더 나은 재건’을 강조했다.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우리 위상은 선진국으로 자리 잡았다. 9월에는 유엔 푸드시스템 정상회의(UN Food Systems Summit)가 개최된다. 사전 각료급회의에서도 식량의 중요성, 빈곤 타파, 질병 퇴치를 강조했다. 무역, 투자, 서비스, 물, 에너지 등 여러 부문에서 글로벌 협력이 필요하고, 빈곤을 타파하기 위한 식량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해 국제사회에서 우리 위상과 주도권을 강화해야 한다.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농업외교는 빛을 발했다. 농촌진흥청이 지난 6월 외교부와 합동으로 중남미에 농업협력 사절단을 파견해 기술 협력외교를 펼쳤다. 7월에는 파키스탄에 코피아(KOPIA) 센터를 설치해 큰 박수를 받았다. 코로나 19로 개점휴업 상태인 정부 타 부처와는 대조적이다. 코이카(KOICA)를 통한 후진국 지원 효과도 크다. 농촌진흥청의 코피아를 통한 개발도상국 지원은 현장 실용적 협력사업으로 현지에서 큰 인기를 끈다. 코피아 센터는 대륙 차원의 농업 협력 협의체로 확대돼 아시아 지역 8개국은 ‘한·아시아 지역 협의체’, 아프리카 지역 7대국은 ‘한·아프리카 지역협의체’, 중남미 5개국과는 ‘한·중남미 협의체’로 발전됐다. 한·중남미 간의 지역 협의체 활동은 정상들 간의 공동 선언문에서 다룰 정도이다.

1961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뉴 프런티어’ 정책을 추진하면서 평화봉사단(Peace Corps)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평화봉사단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농업외교가 식량 지원을 넘어 정책컨설팅, 교육과 훈련, 인력 양성,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성과를 토대로 뉴 프런티어 정책과 같은 ‘K프런티어’ 정책을 추진할 때이다. 단순한 물량 지원은 부작용도 많다. 선심성 물량 지원은 부패한 정권을 더욱 부패하게 할 수 있다. “아프리카 원조가 아프리카 국가를 죽이고 있다”고 하는 잠비아 출신의 담비사 모요(Dambisa Moyo) 박사의 경고를 새겨야 한다. 코로나 19로 비대면과 온라인이 일상화된다. 전방위적 글로벌 여건 변화는 우리 외교의 새로운 전환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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