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세상에 세 종류 거짓말이 있다. 그럴 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라고 말했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자서전을 출처로 삼기도 한다. 아무튼 디즈레일리는 “통계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거짓말쟁이가 숫자를 인용한다”는 얘기를 남겼다.
통계는 과학이다. 현상(現象)에 대한 검증된 조사방법과 계산으로 나온 데이터다. 그 자체가 진실이자 팩트(fact)다. 통계가 거짓이 되는 건 정해진 연구체계를 지키지 않거나, 드러난 데이터를 감추고 뻥튀겨 제멋대로 해석할 때다.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이 최근 ‘주택거래가격 결정에 대한 행동경제학적 이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요약하면 서울 강남의 집값 급등은 최고가격 경신에 대한 언론보도가 늘면서 가격 상승의 기대가 커진 데 기인했다는 내용이다. 지난 몇 년간 실거래 가격, 거래 건수, 언론보도 등의 데이터를 모아 이런 결론을 끌어내려고 복잡한 수학모델을 동원했다.
어처구니 없다. 온갖 규제로 수요를 억누르고 공급은 틀어막은 엉터리 정책의 실패로 집값이 미친 듯 치솟은 건 세상이 다 안다. 초저금리로 돈이 너무 많이 풀린 금융환경도 부추겼다. 이들 핵심 요인은 분석에서 빼고, 집값이 오른 현상을 보도한 언론 탓을 했다. 최고가격 보도로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가 높아져 구매의 쏠림이 일어났어도, 그건 원인이 아닌 결과이고 종속변수의 영향이다. 전제가 성립하지 않고, 논리와 타당성을 결여한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주장이다. 모를 리 없는 연구진이 이런 논문을 내놓은 배경은 쉽게 짐작된다.
통계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통계가 지금처럼 불신받는 때도 없다. 문재인 정부 특유의 현상이다. 정권 입맛에 따라 통계를 왜곡하거나, 보고 싶은 데이터만 골라 부각시켜 진실을 가린다는 비판이 많다.
2018년 8월 취임 1년도 안 된 통계청장이 갑자기 경질됐다. 소득하위 20%(1분위) 가구의 소득이 줄고, 상위 20%(5분위)는 크게 증가해 2008년 이래 소득분배지표가 가장 나빠졌다는 분석을 내놓은 직후다. 현 정부가 간판으로 내건 ‘소득주도성장’의 허구가 실증(實證)된 통계였지만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바꿔야 할 건 통계청장 아닌 정책이었다.
얼마 전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더불어민주당 워크숍에서 “문재인 정부 4년간 집값이 5.4% 올랐는데, 설명해도 국민이 납득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어느 동네, 어떤 집 얘기인지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국민이 왜 분노하고, 정부는 무엇 때문에 스무 차례 넘는 집값안정 대책을 쏟아내야 했나.
한국부동산원 조사에서 7월 서울 아파트값이 한달 만에 19.5%나 뛰었다. 이전 3년간 누적상승률이 17%였고 보면 믿기지 않는 수치다. 표본을 종전의 2배인 3만5000가구로 늘려 정확도를 높였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과거 통계가 잘못된 것이다. 표본이 훨씬 많고 실거래가를 취합하는 KB국민은행 조사는 줄곧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은 서울 아파트 평균매매값이 4년 동안 79% 폭등했다고 계산했다. 부동산원이 처음부터 제대로 조사했다면 비슷한 숫자가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실상과 동떨어진 17%를 계속 우겼다.
세금 쏟아붓는 노인 알바 수십만 개로 실속없는 취업자 수만 뻥튀기하고, 연초 노인일자리 사업이 중단되자 일시휴직자에 포함시켜 통계상 취업자로 남긴 고용통계도 마찬가지다. 왜곡은 차고 넘친다. 정부는 표본과 기준을 멋대로 바꿔 분석의 핵심인 시계열(時系列) 비교까지 어렵게 했다. 스스로 통계의 신뢰성을 무너뜨리고, 의도한 숫자를 만들어 국민을 호도(糊塗)한다.
통계는 합리적 의사결정과 정책 수립, 효과분석을 위한 기초 데이터이자 공공자원이다. 과학적 방법으로 생산되고, 사실에 가감 없는 정확한 해석이 생명이다. 보고 싶고 유리한 숫자만 끌어 쓰는 정치적 도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봐야 할 현상의 거울이다. 아무리 통계를 비틀어도 팩트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 기본을 무시해 통계가 믿을 수 없게 됐고, 현장과 괴리된 정책은 계속 헛발질이다. kunny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