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의 원견명찰(遠見明察)] 모자라지 않기와 아껴 쓰기

입력 2021-09-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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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일렉트릭 사장

대한민국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이다. 1970년대 어느 날 포항 앞바다에서 석유가 나온다고 신문에 대서특필된 적이 있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잠깐이라도 온 국민이 흥분할 만큼 기대에 부풀었던 기억이 살아난다. 기록을 보면 해방 직후의 전기 사정은 우리보다 북한이 훨씬 좋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까지 우리나라의 주력 발전원은 수력 발전이었고 산세가 험한 북한이 그런 발전에 유리한 지형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대륙 진출에 유리한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당시 한반도의 발전소 중 가장 큰 발전소인 수풍 발전소는 전체 전기 생산 능력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1948년 북한이 남한으로의 송전을 중단했을 때 남한의 충격이 어느 정도였을지도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없으면 쓰지 못한다는 단순한 진리일 뿐이다.

전기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편익을 제공하는 에너지에 관한 한, 우리는 항상 부족한 국가이다. 근대화 이전은 차치하고라도 1970년대 후반의 중동발 오일쇼크는 한국 경제를 크게 흔들어 놓았다. 생산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모자라지 않기’이다. 쇠를 녹이는 용광로도, 자동차나 비행기 그리고 선박 등도 에너지 없이는 움직이지 못한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주택이나 건물에도 따뜻함과 시원함을 제공하는 에너지 시설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 없는 석유나 천연가스는 산유국으로부터 수입해야 하고,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도 그 연료를 공급해야 한다. 우리는 오일쇼크를 극복하기 위해서 정부 내 전담부처를 만들어서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을 책임지게 했던 경험이 있다. ‘에너지 안보’는 국정의 최우선 과제이다.

그러나 무한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만큼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욕구의 절제와 ‘아껴 쓰기’가 필요하다. 무엇이 우리의 욕구를 절제하게 하는가? 그 첫 번째는 가격이다. 싸고 유용한 물건을 ‘아껴 쓰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반면에 가격이 비싸면 아무래도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생수는 그렇지 못한 수돗물보다 비싸야 한다. 원가를 고려해도 그렇고 ‘아껴 쓰기’ 위해서도 그렇다. 생수 가격이 수돗물보다 싸다면 먹는 물로 빨래하는 이도 생길 것이다. 사람들은 전기요금을 통상 전기세라고 부른다. 효용 있는 재화를 사용한 대가인 가격이 아니라 국가에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세금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다. 가격은 수요 공급 원칙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되지만, 세금은 국가와 국민 간의 약속으로 결정한다. 분명한 점은 전기요금은 세금이 아니라 가격이라는 것이다. 낮은 전기요금은 국민의 전기 사용을 쉽게 하여 보편적 편익을 제공하지만, 전기를 실제 필요보다 많이 사용하게 한다. ‘아껴 쓰기’가 어려워진다.

‘아껴 쓰기’의 또 다른 방법은 기술이다. 백열등보다는 형광등이, 형광등보다는 LED가 더 높은 효율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기기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 기술이다. 기술은 기기의 소재를 무엇을 사용할 것인지, 기기를 어떤 설계로 만들 것인지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들의 실력이 기술로 구현된다.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과 투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개발에 필요한 비용의 재정적 지원, 개발된 기술에 대한 지적 재산권 보호, 고효율 제품이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의 정비 등이 조화롭게 갖추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정부의 적절한 규제와 국민의 참여이다. 냉난방 온도를 규제하거나 스스로 ‘아껴 쓰기’를 하자는 에너지 절약 캠페인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을 강조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합리적 가격 정책과 끊임없는 기술 개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슈마허의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나오는 대로 적절한 수준의 중간 기술과 ‘아껴 쓰기’로 사는 삶이 행복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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