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영의 미래토크] 블록체인 유감

입력 2021-09-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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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 경영학부 미래학 겸임교수, 에프엔에스컨설팅 미래전략연구소장

신뢰 시스템으로서의 블록체인 활용도는 작지 않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이 많지 않다. 암호화폐, 선하증권, 인증, 저작권 보호 및 디지털 자산 권리화 등이 떠오르는 정도다. 그것도 인증이나 디지털 자산 권리화는 논쟁적 요소가 없지 않다. 블록체인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현실의 쓰임새 간에 상당한 간극이 있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이터베이스 기반의 모든 업무에 블록체인을 적용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저장된 데이터가 위변조되지 않았다는 신뢰를 담보하는 데이터베이스다. 블록이 거래기록, 즉 데이터를 저장하는 파일 덩어리이고, 이 블록이 체인처럼 연결되어 있어 중간 블록의 데이터를 위변조하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블록체인이다. 정리하자면 기능적으로 데이터베이스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블록체인이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블록체인 기반의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이 많지 않은 이유는 블록체인의 비기능적 품질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비기능적 품질’이란 말은 생소한 용어일 수 있다. 정보시스템의 품질 중 하나로 디지털 정책, 전략 및 전문가에게는 귀에 익은 용어다. 블록체인 시스템의 비기능적 품질로는 비용효율성, 수행성, 규모성, 유연성, 상호운영성, 보안성 등을 들 수 있다. 최근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탄소발자국과 같은 것도 비기능적 품질에 넣어야 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 보안성이 나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더 좋다고도 할 수 없고, 다른 비기능적 품질은 매우 낮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에 한 개의 거래를 기록하는 데 많게는 62.8달러가 소요되었으며, 최근 2.5달러로 하락했다. 10원이 안되는 1사토시를 거래하는 데도 2.5달러가 들며, 직접민주주의를 위한 투표 한 개의 기록을 저장하는 데도 2.5달러가 든다. 이더리움의 경우 비트코인보다 2배 이상 높아서, 거래 하나를 기록하는 데 5.6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거래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이를 기록할 블록이 채굴되어야 하는데, 이 채굴 주기가 비트코인은 10분, 이더리움은 15초다. 규모성도 좋지 않다. 비트코인은 1초에 7건, 이더리움은 1초에 15건 정도다. 증권이나 일반 거래를 블록체인에 기록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탄소발자국은 더욱 안 좋다. 블록체인 채굴을 위해서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산수 계산을 해야 하는데, 이때 소요되는 전기소비량이 어마무시하다. 2020년 한 해 비트코인 채굴에 소모된 전기량은 121Twh에 달해 아르헨티나의 한 해 전기 소비량보다 컸다.

비기능적 품질이 문제가 되는 블록체인은 주로 퍼블릭 블록체인에 대한 것이다. 일정한 사용자가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상대적으로 비용효율성, 수행성, 규모성 등이 퍼블릭 블록체인보다 좋다. 참고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이 퍼블릭 블록체인에 해당하며, IBM의 하이퍼레저(Hyperledger)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에 해당한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퍼블릭 블록체인 정도의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것을 떠나서, 여전히 상호운영성, 유연성은 낮다. 또한 블록체인 기반의 응용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는 퍼블릭이건 프라이빗 블록체인이건 동일하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공공 분야에서는 블록체인에 대한 언급이 끊이지 않는다. 기능적 품질로 보아 블록체인의 응용 분야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지털 시스템의 성공과 디지털 전환의 순조로운 이행을 위해서는 기능적 품질뿐만 아니라, 비기능적 품질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디지털 기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를 디지털 유창성(Digital Fluency)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유창성 없이, 디지털 기술에 대한 막연한 이해와 낙관을 가지고 디지털 비즈니스 전략과 정책을 수립하면 예산 낭비와 시간 허비를 할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유창성에 등을 기대고 볼 때, 블록체인 유감이다. 그런데 이 유감이 블록체인에만 그칠까? 인공지능, 3D 프린팅 등의 디지털 기술에는 유감이 없을까?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급박한 상황에서, 디지털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 안전지대에만 머물러 있거나 혹은 디지털 기술에 대해 지나치게 몽환적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사결정 조직구조에 충분한 전문성이 없거나, 최종 의사결정권자의 참모진에 디지털 전문가가 없는 것은 아닐까?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등의 급격한 변화를 준비해야 하는 지금, 신발 끈을 고쳐 매어야 한다. 각 조직에 디지털 전문성이 충분히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는지 점검하고 확인하고 다시 돌아봐야 한다. 이 전환적 여정을 준비하는 정부, 공공, 기업 및 개인에게 바라고 당부하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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