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50주년' 서혜경 "산소 같은 피아노, 앞으로 50년은 더!"

입력 2021-09-1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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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라흐마니노프 사랑…"성악가처럼 노래하듯 연주하고파"

▲피아니스트 서혜경. (사진=리음아트앤컴퍼니)
▲피아니스트 서혜경. (사진=리음아트앤컴퍼니)
"56년간 피아노를 쳤어요. 피아노는 내게 산소와 같아요. 피아노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 없죠. 바로 나 자신과 같은 존재예요."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피아노 사랑은 데뷔 50주년을 맞아 더욱 깊어진 듯했다.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서혜경은 "피아노를 친 지 56년이 되니 전보다 좋아졌다"며 "저만의 특별한 음악으로 인생도 표현하고 깊이도 담아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서혜경은 다섯 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1971년 7월 명동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치며 본격 데뷔를 알렸다. 당시 열한 살의 나이였다. 스무 살이던 1980년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최고상(1위 없는 2위)을 받으며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서혜경이 문을 연 콩쿠르에서 올해 박재홍(한국예술종합학교)과 김도현(클리블랜드 음악원)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서혜경은 "자랑스럽다"고 했다.

"40여 년 전만 해도 동양인에 대한 무시와 차별이 적지 않았어요. 설움이 많았죠.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의 노력 덕분에 인식이 바뀌었어요. 한국인 후배들이 1~2위에 모두 오른 것을 보면서 무척 자랑스럽고 대견해요. 이 대회를 디딤돌 삼아 세계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해맑은 표정과 말투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그이지만, 이날 과거 시련을 회상하기도 했다. 20대에 겪은 아픔들이다. 20대엔 근육 파열이 찾아왔고, 2006년에는 유방암이 발병해 8차례 항암 치료와 33차례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암 치료를 받고 1년 반 동안 피아노를 전혀 치지 못했어요. 영영 오른손을 못 쓰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은 아닌지 무서웠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겼죠. 그러다 '그동안 연습 저축한 게 있는데 못할 게 뭐야'라는 생각으로 무대에 섰는데, 생각보다 잘해냈어요. 하하."

그때 연주한 레퍼토리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였다. 서혜경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힘을 준 곡으로 라흐마니노프를 꼽는 이유다. 그는 지난 1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독주곡 집에 이어서 이달 말 디지털 음반 '내가 사랑하는 소품들(My Favorite Works)'을 발표한다. 26일엔 예술의전당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할 예정이다.

"라흐마니노프 콘체르토는 피아니스트들에게 에베레스트 산 같은 누구나 오르고 싶은 곡이에요. 영화 '샤인'에서 주인공이 연주하다 쓰러지고 말았던 난곡이죠. 러시아에선 연주하기 너무 어렵고 까다로워 '코끼리 협주곡'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예요. 그래서 도전 욕구가 생겨요."

그는 러시아 음악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린다.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축전 기간 중 모스크반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했으며 2010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전곡 음반과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전곡 음반을 도이치그라모폰(DG) 레이블로 선보인 바 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공연이 취소되는 상황에서도 음반 발매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전에는 '세계적', '1등' 같은 목표를 세웠지만, 건강하게 오래도록 피아노 앞에 서겠다는 소박한 바람도 드러냈다.

"성악가처럼 노래하듯이 연주해 관객의 마음을 울리고 아픈 곳을 치료해 주는 피아니스트로 남고 싶어요. 유자왕, 랑랑 같은 기교 넘치는 피아니스트가 주목받는 지금 시대도 '로맨틱 피아니스트' 계보도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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