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지만 그러기는커녕 여러 악재가 소리 없이 다가와요. 전기료 인상이 그중 하나입니다.”
한국전력이 8년 만에 전기요금을 인상한 가운데 중소기업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이 코로나19에 따른 매출 감소부터 주 52시간제 확대, 최저임금 인상까지 다(多)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료 인상 부담까지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가을비가 내리는 27일 오후 경기 의정부시 용현산업단지에서 울려 퍼진 공장 기계들의 소음이 기자에겐 이들의 한숨으로 들렸다. 이곳은 소재ㆍ부품 제조 중소기업들이 밀집된 산업단지다. 중소기업들의 공장에선 근로자들은 묵묵히 일하고 있지만 ‘소리 없는 아우성’이 가득했다.
창호를 제조하는 A 중소기업 관계자는 “저희는 그동안 다른 공장들보다 많은 월 매출에 10% 이상 전기료를 내고 있다”며 “작년에 매출이 바닥을 찍어도 버텼는데 근로시간 문제에 최저임금까지 좋지 않은 소식만 찾아와 인상만 쓴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A 중소기업 월 고정 전기료는 2000만~2500만 원 수준이다. 이번 4분기 산업용 전기료가 약 2.8% 인상되면서 앞으로는 전기료가 월에 약 40만~50만 원 더 부가될 예정이다.
그와 함께 공장 뒤편으로 향하자 전기 소비량을 측정하는 장치인 전력량계가 잔뜩 녹이 슨 채 눈에 띄었다. 고압 전류의 전압을 낮추는 오래된 노후 변압기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전기료를 절감할 수 있는 에너지 저장 시스템인 ESS는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열악한 기본 전력 장비뿐이었다.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급감한 전자 부품 B 제조 공장의 박 모 대표(61)는 이번 전기료 인상이 전반적인 물가를 올리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대표는 “전기료가 10만 원 정도 오를 거 같은데, 얼마 안 돼 보이지만 문제는 다음”이라며 “전기료 인상이 부자재와 원자잿값을 오르게 해 ‘나비효과’처럼 더 큰 부담을 안겨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만난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근의 전기료 인상 타격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더 큰 악재가 터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들은 전기료 인상이 결국 물가 인상으로 이어져 경영난을 가중할 수 있는 우려를 한목소리로 제기했다. 전기료 인상이 이번 한 번에 그치지 않으리란 관측도 있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제조 중소기업의 약 90%는 전기요금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ESS(에너지저장장치)가 설치돼 전기료를 아끼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더 비싼 전기를 사용한다. 전기료 사용 비중이 큰 뿌리 중소기업에는 어려움을 가중한다.
강동한 한국단조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뿌리 산업인 우리 업계는 월 억 원 단위로 전기료를 내기 때문에 상황은 심각하다”며 “한전 측에선 한꺼번에 올리면 여론에 타격을 받으니 앞으로 계속 이렇게 조금씩 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중소기업은 악화 일로를 걸어왔다. 문제는 난관으로 가득한 이 길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 달부터 전기ㆍ수도ㆍ가스, 공공서비스 등 요금이 이번 상승세에 동참할 것이란 분석이 나와 중소기업의 시름은 계속 깊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