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의 반도체 기밀 요구, 정부가 국가이익 지켜야

입력 2021-09-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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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글로벌 반도체기업에 대한 투자를 압박하는 데 이어, 자국 내 반도체 공장을 보유한 기업에 민감한 영업기밀 공개를 요구함으로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난감한 상황에 몰리고 있다. 미국의 심각한 차량용 반도체 공급부족에 따른 조치다. 하지만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운 지나친 강압이 아닐 수 없다.

미 상무부 기술평가국은 국내외 반도체 제조·설계 및 수요업체 등 공급망 전반에 걸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키로 했다. 미국과 거래하는 반도체 관련기업 모두가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재고·주문·판매 정보 등을 45일 안에 자발적으로 자신들에 내놓으라는 건데, 외부에 유출되어서는 안 될 영업기밀까지 망라하고 있어 파문이 일고 있다. 미 정부는 기한 내 정보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별도의 강제조치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요구에는 기업들의 영업비밀이 대부분 포함된다. 제조하고 있는 반도체 유형, 제품별 월 매출, 고객사 명단, 주요 고객별 매출비중, 재고 현황, 생산능력과 수율(收率), 생산소요기간, 설비증설 계획 등이다. 업계로서는 가장 민감한 내부의 핵심 정보일 뿐 아니라, 경쟁사나 고객 등 외부로 노출될 경우 영업에 심대한 타격과 경영전략의 혼란을 가져올 위험이 큰 자료들이다.

당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글로벌 반도체기업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영업에 치명타로 작용할 우려가 큰 까닭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미 정부의 과도한 요구는, 결국 바이든 행정부의 더 거세지는 자국우선주의의 연장선에 있다. 중국과 글로벌 기술패권을 놓고 벌어지는 반도체 전쟁이 가열되는 데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요 산업의 경쟁력을 잃고 있는 미국의 무리수다.

우리 기업들이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뾰족한 방도가 없는 현실이다. 미국의 강압은 자국 산업이 위기에 처한 다급한 실정을 반영한다. 미래산업의 핵심인 반도체를 한국과 대만 등에 의존하면서 불안해진 공급망 재편과 생산기반을 갖추기 위한 전략이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한 세계전략과 국가안보 관점으로 반도체산업에 접근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기업의 이익과 직결된 기밀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은 글로벌 자유무역의 틀을 흔드는 일이다. 문제가 복잡하고 심각하며 해결책 또한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기업역량만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반도체산업은 한국 경제의 핵심이자 성장의 원동력이다. 이익 보호의 전략적 차원에서 정부가 적극 나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논리적 설득과 함께 외교 역량을 동원해 핵심 산업을 보호하고 한국 경제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합리적 해결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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