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천기술 기반 中보복 안 받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2차 대전 이후 세계경제질서의 스탠더드와 지배구조를 주도해 왔던 미국과 유럽이 주도국으로서의 위상과 신뢰를 급격히 떨어뜨리는 데 한몫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코로나19가 꼽히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이념은 제쳐두고 미국에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한다는 입장의 트럼프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방법이다. 그러나 연대를 중시하는 바이든은 우리나라를 중국에 대항하는 연대 안에 넣으려 압박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전개될 새로운 미국과 중국 간 마찰 시대에 어떻게 관계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의 앞날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간자 입장에 서 있는 우리로서는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친다면 더 불리해지는 만큼 현 정부 들어 중국으로 치우쳤던 대외경제정책상의 우선순위를 조정해 하루빨리 균형을 찾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미·중의 패권 다툼 속에서 우리나라의 선택은 결국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자유무역·다자체제를 지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은 동아시아에 있는 제조업 선진국이고, 주요 10개국(G10) 국가다. 동아시아의 제조업 선진국으로서 한국은 아시아 생산 네트워크를 유지·발전시키고, 자유무역과 다자체제를 지키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사례는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 일본은 미·중 간 화웨이 5G 네트워크 장비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했을 때 미국 편에 동참했고 인권 문제에서도 미국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지금까지 일본을 향해 특별한 보복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미국산 첨단기술에 대한 제재가 확대됨에 따라 중국에 있어 일본 및 독일과 같은 원천기술 보유 국가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을 시사한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바이든 정부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 정책은 미국 회사에 의한 미국 내 생산이 아닌 미국 내 생산만을 의미하므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미국시장 진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의 정책 의도가 최종 제품의 미국 내 생산뿐만 아니라 공급망 전체를 아우른다는 점에서 우리 중소기업들의 미국 진출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어 “중국과 관련해서는 재무부 중국군사기업(CCMC) 목록에 게재된 기업과의 거래가 당장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향후의 동향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공급망상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CCMC 목록에 등재된 기업들과의 직간접·기타 라이선스 거래 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가 자유무역의 파괴나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 글로벌 밸류체인의 약화로 이어지지 않게 하면서도 중국의 국가주의적 체제가 가진 불공정성을 적절하게 시정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기회에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미·중 갈등을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이 미국과의 갈등으로 반외국제재법 등을 시행하면서 외국 기업에 위협이 되고 있지만 중국에 들어간 대다수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현실적인 이유로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순 없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 수요를 국내로 가지고 와서 위험성이 낮은 한국 내 중국 수출을 유도하자는 것이다.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세계 경제에서 새로운 위험요소는 인플레이션과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다. 미·중 영향으로 2분기 중국 수출이 줄게 되면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번 기회에 중국 수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모두와 FTA를 체결한 국가다. 이 점을 활용해 해외 직접투자를 우리 쪽으로 가지고 와야 한다”며 “미국과 유럽연합(EU) 기업이 우리나라에 진출하면서 중국을 (우리 기업과) 같은 수출시장으로 이용할 수 있으면 대응도 같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 연구위원도 “중국 내수가 안 좋으면서 우리나라가 수출 영향을 받을 수 있으나, 중국 시장이 미국 등으로부터 견제받으면서 중국 이외 지역의 수출 증가에서는 반사이익을 보는 부분도 있다”며 “중국 시장에 전통적 접근도 필요하지만,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와중에는 다르다. 중국 제품의 대체 현상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