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 유럽 변방서 ‘백신접종 선도국’으로 포르투갈의 ‘슬기로운 함께 살기’

입력 2021-10-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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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조치 해제 마지막 단계 돌입
사망자 크게 줄며 ‘백신효과’ 증명
재정지원 연장 등 일상회복 박차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원인 모를 폐렴이 집단 발병했을 때만 해도 국제사회는 상황이 이렇게 심각해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2년 가까운 기간 동안 세계적으로 2억3000만 명 이상의 감염자와 47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인류는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와 목숨을 건 대결 대신 슬기로운 동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도 이달 말부터 ‘코로나와 함께 살기’를 시작한다.

올해 초만 해도 일일 신규 확진자 1만 명대를 이어가던 유럽의 변방 포르투갈. 넘쳐나는 코로나19 환자들로 병상 부족, 의료 시스템 붕괴를 걱정해야 했다. 독일 의료지원팀의 도움까지 받은 이 나라가 이제는 백신 접종 선도국으로 세계 각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까지 이투데이 편집부장으로 일하다 최근 포르투갈 코임브라 이민행에 나선 장영환 씨를 통해 ‘위드 코로나’의 길을 열어가는 포르투갈 현지인들의 삶을 미리 살펴봤다.

▲관광객들이 지난달 25일 코임브라 구시가지의 관문 역할을 하는 페레이라 보르게스 거리를 지나고 있다.
▲관광객들이 지난달 25일 코임브라 구시가지의 관문 역할을 하는 페레이라 보르게스 거리를 지나고 있다.

#확연히 달랐던 두 공항

9월 5일 오전 11시 포르투갈의 관문 리스본 포르텔라 국제공항.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도착한 이곳은 코로나19를 잊을 정도로 활기찼다. 각국에서 들어온 여행객들로 입국장은 붐볐다. 짐을 실은 카트로 거리를 유지한 채 인파에 밀려 입국장 밖으로 빠져나와야 했다. 전날 포르투갈에서는 1713명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와 1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공항청사 안에서는 현지인들이 각자의 방문객을 맞이하느라 북적였다. 모두들 마스크는 했지만 거리두기는 실종됐다.

PCR(핵산증폭)검사 음성확인서와 백신접종증명서를 경유지에서 확인해서인지 리스본공항에서는 음성확인서를 살펴보는 절차가 없었다. 방역복을 입고 여행객을 통제하는 안전요원도 찾기 어려웠다.

환경미화원과 공항 관계자들이 오갈 뿐 적막감만 감돌던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출국장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었다.

#실외는 자유롭게, 실내는 엄격하게

포르투갈 입국 후 필자가 자리 잡은 곳은 인구 14만 명의 중부권 도시 코임브라(COIMBRA). 1290년에 설립된 코임브라대학교로 유명한 교육 도시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 곳곳에서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서울의 모습과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거리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모두 쓰고 있는 건 아니었다. 포르투갈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신규 확진자 동향에 따라 방역 조치를 다르게 적용하고 있는데, 코임브라는 완화된 조치를 적용하는 지역이었다.

언뜻 봐도 30~40% 정도의 사람들이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듯했다. 마스크를 벗어도 주변에서 ‘마스크 쓰세요’라고 지적하거나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일은 없었다. 일부는 마주오는 사람이 있을 땐 마스크를 꺼내 쓰기도 했다. 휴일 몬데구강 주변 공원은 코로나19 발생 전의 일상에 더 가까웠다. 피크닉을 나온 시민들은 마스크를 팔뚝에 끼우거나 턱밑까지 내렸다. 몇몇은 아예 마스크 없이 휴식을 취했다.

실내에서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남서쪽에 위치한 코임브라 최대 쇼핑센터 ‘포룸(FORUM)’에서는 쇼핑객 대부분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패션잡화점 ‘프리마크(PRIMARK)’는 매장 내 인원을 145명으로 제한하고, 진행요원이 입구에서 입장 인원을 통제했다. 시민들은 거리를 둔 채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에게서 불만스런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이런 질서는 식료품 매장 계산대에서도 이어졌다.

포르투갈의 2대 도시 포르투(PORTO)의 실내 방역 조치는 더 엄격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구 전문점 ‘이케아(IKEA)’에서는 카페테리아를 이용하려고 하자 안전요원이 ‘백신접종 증명서가 있어야 한다’며 서류 제시를 요구하기도 했다.

며칠간 지냈던 코임브라의 에어비앤비 가맹 숙소에서도 이용자 전원의 PCR 검사 음성확인증을 제시한 후에야 숙박 절차가 마무리될 정도였다. “8월까지만 해도 레스토랑 안에서 식사를 하려면 백신접종을 증명해야 했는데, 지금은 그나마 상황이 좋아져 그냥 들어가도 제재하지 않는 곳이 늘었다”고 현지 안내를 맡은 교민이 설명했다.

실외에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되, 실내에서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포르투갈 국민들의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신음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르투갈의 이런 평화로운 일상은 어떻게 찾아왔을까?

▲포르투갈의 2대 도시 포르투에 위치한 가구 전문점 ‘이케아’를 찾은 시민들로 매장 안이 북적인다. 대부분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쇼핑을 즐기고 있다.
▲포르투갈의 2대 도시 포르투에 위치한 가구 전문점 ‘이케아’를 찾은 시민들로 매장 안이 북적인다. 대부분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쇼핑을 즐기고 있다.

#백신에 희망을 건 사람들

포르투갈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지난해 12월 27일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와 신년 연휴 기간 확진자가 크게 늘어나자 정부는 강력한 통제에 들어갔다. 포르투갈 국민들은 주말 통행금지(13시~다음 날 05시)와 도시 간 이동 금지(금요일 23시~월요일 05시), 각급 학교 전면 휴교령, 종교 행사 중단, 5인 이상 집결 금지, 상점 22시 영업 종료 등 록다운에 가까운 제재를 견뎌내야 했다.

한 달여간의 강력한 봉쇄 조치는 효과를 발휘했고, 올해 1월 1만 명이 넘던 일일 신규 확진자는 2월 들어 2000명대로 낮아졌으며 사망자도 두 자릿수로 떨어졌다.

백신 접종은 계속 진행돼 5개월 만에 1차 접종률 50%를 넘어섰다. 유럽의 몇몇 나라들이 백신접종 거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포르투갈 국민들은 묵묵히 백신접종을 위해 줄을 섰던 것이다.

9월 10일 발표된 유로바로미터(Eurobarometer) 설문조사에 따르면 포르투갈인의 87%가 ‘백신은 위험보다 이익이 더 크다’고 답했다. ‘백신 접종은 시민의 의무’라는 항목에도 대부분 동의(86%)했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이다. ‘정부의 예방접종정책에 대해도 만족한다’는 답변도 82%(EU 평균 50%)로 높게 나왔다.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힘입어 포르투갈은 9월 말 백신 1차 접종률이 90%를 육박했다. 높은 백신 접종률에도 신규 확진자는 2000명대를 유지했지만, 사망자는 급격하게 줄었고 감염재생산지수도 1.0 이하로 함께 낮아지며 포르투갈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에 자신감이 붙었다.

8월 10일부터는 12~15세의 경우 의사처방전 없이 부모의 동의만으로도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지침을 바꿔 접종 폭을 넓혀갔다. 2021~2022학년도 신학기 시작을 대비한 조치였다.

백신 접종률이 오르자 포르투갈 정부는 9월 13일부로 ‘야외 공공장소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이는 장소와 거리두기 유지가 어려운 곳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다. 9월 15일에 포르투갈은 백신접종 완료율 82%로 세계 1위에 오른다. 이와 함께 방역당국은 백신접종 완료율 85%에 근접함에 따라 10월 1일부터 ‘비상상황’에서 ‘경계상황’으로 위기 단계를 하향했다. 방역 조치 해제를 위한 마지막 단계인 셈이다.

#일상 회복을 위한 발걸음

이제 포르투갈은 바와 디스코텍의 영업이 허용됐다. 상점의 영업시간, 식당 착석 인원 제한도 해제됐다. 음성확인서 제출 의무가 사라졌으며, 기업체에 대한 재택근무 권고도 철회됐다.

하지만 항공·선박 여행, 양로원 등 보건시설을 방문하거나 대형 문화·체육행사와 바·디스코텍을 이용할 때에는 EU 디지털 코로나 증명서 또는 음성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대중교통, 양로원, 요양원, 병원, 공연·행사장, 대형마트, 대형 유통점, 쇼핑센터 등에서는 마스크 착용 의무를 유지했다.

제한 조치가 단계적으로 해제되는 만큼 일상회복으로의 연착륙을 위한 정부의 막바지 노력도 더해지고 있다. 페드로 시자 비에이라(Pedro Siza Vieira) 포르투갈 경제부 장관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의 점진적인 회복을 돕기 위해 정부 지원 체제를 연말까지 유지할 뜻을 밝혔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근로자의 임금을 지원해 주는 대신 해고를 금지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팀은 “예방접종센터가 ‘오픈 하우스’ 형식으로 운영될 것”이라며 백신 미접종자들에게 “독감의 계절이 오기 전 가능한 빨리 접종해 줄 것”을 당부했다. 안토니오 코스타(Antonio Costa) 총리는 “백신 물량을 충분히 확보했다. 유럽의약품청이 부스터샷에 대한 결정을 내리면 65세 이상의 국민들이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 세 번째 접종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력히 호소했다.

정부의 방역 완화 조치와 관련해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예방접종과 코로나 검사에 대한 정부의 활동은 계속돼야 한다”며 “부스터샷과 바이러스 변이에 대한 지속적이고 면밀한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들에 대해서도 “이번 조치가 제재 해제가 아닌 개인의 책임에 기반한 과도기적 단계임을 명심해야 한다”며 “감염병 위험 관리에 개인의 더 큰 책임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9월 넷째 주 포르투갈 일일 신규 확진자는 1000명 아래를 유지하고 있으며, 사망자는 한 자릿수를 이어가고 있다. 감염재생산지수도 0.83으로 안정적인 단계에 놓여 있다. 포르투갈이 코로나19 극복의 모범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정부의 강력한 방역조치와 신속한 백신 공급, 방역정책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국민의식이 일궈낸 합작품이다.

국민의 85% 이상 백신 접종 완료를 계기로 코로나19 이전 일상 복귀로 한 발자국 더 다가선 포르투갈이 얼마나 슬기롭게 ‘위드 코로나’의 삶을 만들어갈지 전 세계는 계속해서 지켜볼 것이다.

글·사진/코임브라(포르투갈)=장영환 전 이투데이 편집부장 cheh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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