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이러한 조형적 실험을 통해 탄생한 작업은 관객에게 즉각적인 공감각적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본래의 기능과 의미를 왜곡시킴으로써 물리적 사물에 대한 인간의 인식 능력과 절대적 기준이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도구가 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18년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이다. 그간 선보였던 유선형의 설치 작업부터 처음으로 선보이는 페인팅 작품까지 작가의 확장된 작품 세계를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다.
작가는 신작 'Measuring(메저링)'를 통해 평면 위에 변화된 형상의 자를 등장 시켜 회화적 공간을 구축한다. 페인팅 작업은 설치 작업과는 또 다른 매체의 특성을 담아내며 회화적 언어를 확장해 나간다. 설치 작품이 지닌 관람자와 공간, 오브제 간의 관계성에 주목해 캔버스 화면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다채로운 형태의 자를 등장시킴으로써 캔버스 화면의 한계를 극복한 유기적이면서 역동적인 화면을 구현해내고 있다.
작가의 자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잴 수 없는 자'다. 실존적 가치가 삭제된 작가의 자는 절대적인 정확성과 확고한 규범성이 아닌, 그 반대 이념인 유동성과 추상성이라는 작가의 개념적 해석의 의도가 깔렸다. 자는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정확한 눈금과 획일화의 상징이지만, 작가에 의해 조작되고 확대됨으로써 기존의 획일성을 거부하고 세상을 대하는 변화된 기준과 시각의 다양성을 제시한다.
작가는 "누구나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자, 이 자가 자유롭게 변형되는 동안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으리라 믿었던 많은 것들이 조금씩 변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며 "이를테면 좁혀질 것 같지 않은 타인과의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지고,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의 무게가 가벼워지며 잡히지 않을 것만 같은 먼 미래가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2일까지 서울 성수동 아뜰리에 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