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70년 전, 그들’이 사는 세상

입력 2021-10-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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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 정의당 의원 (사진제공=류호정 의원실)
▲류호정 정의당 의원 (사진제공=류호정 의원실)
대한민국 ‘형법’은 범죄의 성립과 처벌에 관한 법입니다. 국민과 국가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성범죄 처벌로 보호해야 할 법익은 성적자기결정권입니다. 70년, 정확히는 68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조항이 있습니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상식이 바뀌었습니다. 관련 범죄의 형태는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법만 그대로인 죄가 있습니다.

강간죄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강간의 필요조건은 무엇인가요? 아래에서 골라 주세요.

1. 필사적인 반항의 흔적이 있어야 강간이다. 2. 폭행과 협박이 있었어야 강간이다. 3.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는 강간이다.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강간을 어떻게 볼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야말로 달라진 세상에 살아가고 있지만, 혹시 70년 전의 관점으로 성범죄를 바라보고 있진 않으신가요.

저는 지난해 8월 12일, ‘성범죄 처벌 강화를 위한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일명 ‘비동의강간죄’를 도입하는 법안입니다. 성범죄 처벌에 관한 기본법인 형법 제32장을 국제적 흐름에 맞춰 전면 재정비하는 법안입니다. 보호 법익에 맞춰 제목부터 ‘성적침해의 죄’로 변경했습니다. 간음이라는 법문을 모두 성교로 바꿔 유사성행위 등 간음이 아닌 행위를 포괄하게 했습니다.

형법 제297조 강간죄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유형화했습니다. 제1항은 ‘상대방의 동의 없이’, 제2항은 ‘폭행, 협박 또는 위계, 위력으로’, 제3항은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로 나누어, 이른바 비동의강간죄를 신설하고, 기존 법으로 포괄하지 못했던 다양해진 위계, 위력 관계로 인한 성범죄 등을 적용 가능할 수 있게 했습니다. 1950년대에 멈춰 있는 법을 2021년으로 업데이트합시다.

단순히 발의에 그치지 않으려 지난 8월 국회에 편지를 돌렸습니다. 21대 총선에 출마한 1430명의 후보 중 비동의강간죄 도입에 찬성했고 당선되신 45명께 여전히 비동의강간죄 도입에 찬성하시는지 여쭈었습니다. 여론의 부담 탓이었는지, 응답률은 높지 않았습니다. 어떤 분은 편지 자체를 거절하셨습니다. 4·7 보궐선거에 보인 ‘이대남’의 표심에 온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때였으니까요. 오세훈 당시 후보에게 70% 이상의 표를 몰아준 이대남(20대 남성)을 위해 정치권은 갖은 정책을 쏟아냈습니다. 비동의강간죄가 도입되면 계약서를 써야 한다느니, 무고가 폭증할 거라느니 하는 이야기도 함께 터져 나왔습니다. 계약서 필요 없습니다. 무고에 대한 우려는 무고죄를 손보면 될 일입니다.

비동의강간죄는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는 강간’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을 뒤늦게나마 법제화하자는 것입니다. 성범죄 처벌 강화에 있어서만큼은 남녀의 인식이 다르지 않습니다. 시사인 설문 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80.8%, 여성의 93.8%는 성범죄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비동의강간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과 여를 나누는 법이 아닌, 가해자와 피해자에 관한 법입니다.

앞서 언급한 같은 선거에서, 15%의 ‘이대녀’(20대 여성)는 기득권 양당의 후보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이를 새로운 정치세력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20대 청년층은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젠더선거로 보았다는 당시의 평가를 감안한다면, 감히 단언합니다. 뽑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우리는 대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는 기득권 양당의 유력 후보이신 이재명, 홍준표 후보께 비동의강간죄를 공약에 포함해 주시라 말씀 드렸습니다.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참모들 탓이라 위안할 뿐입니다. 대한민국을 2027년까지 이끌지도 모를 분들입니다. 그러나 강간죄에 있어서만큼은 여전히 1953년에 머무르시겠다 합니다. 여전히 ‘사력을 다해 저항했음’을 피해자가 증명해야 하고, 폭행과 협박이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임을 재판을 통해 밝혀야 한다고 하십니다. 지치지 않겠습니다. 정의당의 대선 후보를 포함한 각 당 후보들의 입장을 끝까지 따져 묻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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