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는 미술 tip] 나무 옆 두 남녀의 대화를 엿듣다

입력 2021-10-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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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살레 '현실의 연금술' 11월 13일까지 리만 머핀

▲데이비드 살레 '현실의 연금술' 전시 전경. (사진=리만머핀 서울)
▲데이비드 살레 '현실의 연금술' 전시 전경. (사진=리만머핀 서울)
미국의 현대미술가 데이비드 살레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작업한 'Tree of Life' 시리즈를 서울에서 볼 수 있다.

살레는 정교하면서도 직관적인 접근 방식으로 친숙하거나 낯선 주제 간의 새로운 연관성 및 관계를 제시하는데, 이번 연작에선 남녀와 생명의 나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관계성을 구상했다.

오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리먼머핀에서 열리는 데이비드 살레의 개인전 '현실의 연금술 Alchemy in Real Life'은 살레와 리만머핀의 네 번째 전시다. 서울 갤러리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살레는 신작 8점을 선보인다.

이번 연작의 특징은 다양한 상호 관계에 놓인 남녀가 등장하는 삽화 형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대공황 시기에 명성을 얻고 잡지 '뉴요커'에서 한 컷 만화를 부흥시킨 피터 아르노의 만화를 연상시킨다.

살레의 'Tree of Life' 연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화 중인 것처럼 보인다. 관람자는 두 사람의 대화를 유추해보며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다.

특히 'Tree of Life #26'는 오버코트에 구겨진 모자를 쓴 침울한 표정의 남성이 끈이 없는 드레스와 보석으로 장식된 목걸이, 큰 모피 코트를 차려입은 여성을 막아선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회색조의 인물들은 밝은 파란색 배경과 중앙의 붉고 잎 없이 앙상한 나무와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전체적으로 추운 겨울밤의 심상을 자아낸다. 작품의 왼쪽 아래 모서리에는 손으로 그려 넣은 꽃들이 마치 여름날의 환영처럼 표현돼 있다.

관람자는 어떤 중요한 시점에 놓인 두 인물을 우연히 본 것 같은 인상을 받는데 어쩌면 작품 속 여성은 자신 뒤에 있는 남성을 방금 알아차렸거나, 혹은 이 남성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그녀를 막 부른 것일 수도 있다.

해당 연작의 모든 작품에서 발견되는 대상과 이들이 처한, 간혹 맥락 없는 상황 간의 모호한 관계성은 전체 스토리를 쉽게 파악할 수 없게 한다.

리만 머핀 관계자는 "살레의 전체 작업이 그렇듯 관람자는 각 작품에 묘사된 장면의 직전이나 직후의 상황을 가늠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알 순 없다"며 "작품이 담고 있는 서사를 전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작품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나무'도 이번 연작의 특징이다. 캔버스를 수직으로 이등분하고 피사체와 배경의 구분을 불분명하게 하는 나무를 눈여겨보자. 작품 속 나무는 두 성별, 즉 여성과 남성 사이를 시각적으로 분리하는 장벽 구실을 한다. 이는 에덴동산의 역사적 묘사 방식이나 타로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참조하는 형식적 장치다.

살레의 동명 연작에 등장하는 생명의 나무는 작품 속 장면에 포개어져 시리즈 전체에 어떤 흐름을 제시한다. 나아가 등장인물의 시대를 특정 짓는 의복이나 회화적 양식에 일종의 영원성을 부여한다.

눈여겨볼 만한 요소는 지표면 위에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나무의 윗부분 뿐만 아니라 땅속 뿌리까지 함께 화폭에 담긴 점이다. 작품에서 나무의 뿌리는 전체 구성의 하단부 1/3을 차지하는데, 상단의 커다란 캔버스 바로 아래 개별 패널로 구획돼 배치되기도 한다.

▲연작 'Tree of Life #26'.  (사진=리만머핀 서울)
▲연작 'Tree of Life #26'. (사진=리만머핀 서울)

리만 머핀 관계자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 하단부 패널은 폭넓은 의미로 작품의 '무의식'이나 집단적 역사의 재현이기도 하다"며 "혹은 단순히 과거나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를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패널들은 살레의 관계적 구성에 대한 성향과 기술은 물론 형태적 표현의 풍부함이 새로운 정점에 달했음을 방증한다.

각양각색의 나무뿌리가 사다리나 벌레, 인간의 두상, 몸통, 손, 그리고 순수한' 관념의 구절들과 뒤섞인 구성은 강렬하고 생동감 넘치는 색의 사용과 힘찬 선의 표현이 돋보이는 살레 특유의 화법을 전유한다.

한편, 살레는 영향력 있는 시각 예술가 집단 '픽처스 제너레이션(Pictures Generation)'의 일원이다. 그간 그는 대중문화나 상업 광고에서 빌린 각기 다른 이미지들을 직접 관찰해 만든 이미지나 다양한 예술사적 참조와 결합하여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구축해왔다.

살레의 다층적 회화 작업은 주제 자체를 전면에 드러내는 대신 즉각적인 형식적 울림을 전하고, 감상하는 이들의 열린 해석과 다양한 접근 방식을 수용한다. 또 화면 전체에 시선이 고르게 닿을 수 있도록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오랜 시간 관조해야 작품의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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