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호통치려면 공부부터 합시다

입력 2021-10-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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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반도체 담당이 아니라 그 질문엔 답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중기위) 국정감사에선 촌극이 벌어졌다. 이장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증인으로 참석한 노태문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에게 “최근 미국이 반도체 산업 핵심 정보를 달라는 요구를 했는데, 대응이 가능하냐”라고 물은 것이다.

스마트폰 사업 수장인 노 사장은 당연히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삼성전자엔 크게 네 개의 사업 분야가 있고, 사업 분야마다 각각 대표가 있다. 세계적 기업이 으레 그렇듯, 사업부 간 공유할 수 있는 정보는 한정돼 있다. 일반 국민은 모를 수도 있다지만, 우리나라 산업을 담당한다는 상임위 국회의원이 몰라도 된다기엔 너무 기본적인 내용이다.

애초 노 사장을 국감에 불러들인 명분부터 뚜렷하지 못했다. 삼성전자가 코로나19 상생 국민지원금 지급 시기에 맞춰 편의점에서 ‘갤럭시워치4’를 판매한 것이 고의적이라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프로모션 기획 기간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였다. 예언가가 아니고서야 국민지원금 지급 여부를 알 수 없는 시기다.

의혹을 이루는 근거가 빈약하니 질문의 날도 한없이 무뎌졌다. 무뎌진 질문으로 애써 추궁하려니 남는 건 자극적인 단어와 마구잡이식 추측뿐이었다.

"소상공인 밥그릇 뺏은 파렴치한 행태"라고 호통을 친 이 의원은 국민지원금 지급 결정과 판촉방식 기획 시점이 맞지 않는다는 답변을 듣고도 도돌이표처럼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단어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은 이야기가 수차례 이어졌다. 7시간 넘게 기다려 10분 남짓 진행된 노 사장 심문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자면 국감의 본질을 되새겨보게 된다. 국감은 국회 상임위가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의 정책 현황을 점검하는 것이다. 기업인 증인 채택은 촘촘한 검증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기업인이 바람직하지 못한 경영을 했다면 당연히 불러낼 수 있지만, 기업 길들이기나 의원 개인의 이름 알리기 목적으로 이용하는 순간 주객전도가 되고 만다. 이번 산자위 국감에서 나온 장면들이 딱 그랬다.

그런데도 내년 국감장에선 기업인들의 공허한 '죄송합니다'가 계속 울려 퍼질 것이다. 기업인 소환이 어느새 뺄 수 없는 국감 단골 메뉴가 된 지 오래여서다. 그렇다면 이왕 부르는 거, 최소한의 공부라도 해보는 건 어떨까. 기업으로서도 '뼈 아프다'라는 반응을 불러낼 만한, 송곳같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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