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 금융위원장이 가계부채 보완책 발표를 앞두고 고심에 빠졌다. ‘가계부채 저승사자’를 자처했던 고 위원장이 전세대출 등 실수요자 피해를 최소화하라는 청와대의 입장 전달에 고강도 가계부채 정책에서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이에 금융당국의 ‘밀어붙이기’식 가계부채 관리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는 분석이다. 은행장들과의 간담회가 오는 28일로 예정되면서 이번달 말로 예정됐던 가계부채 보완책도 간담회 이후로 연기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자율적인 대출규제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각 은행마다 취할 수 있는 추가 대책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고승범 위원장은 이달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 은행장과 지방은행·인터넷전문은행장과의 간담회를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 종합국감이 끝나는 21일 이후가 유력한 가운데 구체적인 날짜를 조율 중이다. 이번 간담회는 고승범 위원장 취임 후 진행하는 금융기관 및 업계와의 만남 일환이다. 고 위원장은 지난달 5대 금융지주 회장과의 간담회를 시작으로 금융협회장, 정책금융기관장, 자본시장 업계·유관기관을 만나 의견을 청취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취임 이후 금융기관 및 업계 진행했던 릴레이 상견례 일환으로 만나는 것”이라며 “잠정적으로 26일로 정해놨지만, 상황에 따라 조금 앞당기거나 미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이 예고된 가운데 4300조원까지 불어난 가계 기업 등 국내 민간부채가 경제위기의 뇌관이 되지 않게 관리해야 하는 금융당국으로선 고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주 발표할 예정이었던 가계부채 보완책이 은행장과의 회동 이후인 이달 말로 연기될 가능성 높아진 셈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위가 최근 전세대출 규제를 일부 완화해주면서 가계부채 관련 은행의 자율적 대책을 강조하는 시그널을 보냈다”며 “은행 차원에서도 조만간 정부가 발표할 가계부채 보완책에 관련한 자체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가 조만간 발표한 가계부채 보완책에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조기 강화, 금융사 자체 가계부채 관리 강화 시스템 구축, 실수요자 보호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DSR 규제에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이 결정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고 위원장은 “가계부채 관리 대책에 포함될 내용과 관련해선 크게 보면 DSR 관리의 실효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난 8월부터 말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DSR 기준은 은행별로 평균 40%, 비은행 금융사별로 평균 60%가 적용된다. 올 7월 시행된 ‘개인별 DSR 40%’ 규제 적용 대상은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의 시가 6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 △1억 원 초과 신용대출이다. 내년 7월부터 총 대출액 2억 원을 초과할 때, 1년 후에는 총 대출액이 1억 원을 초과할 때로 확대될 예정인데 이를 앞당기는 방안이 보완책에 담길 가능성이 크다. 대상도 1금융권과 2금융권까지 포함해 일괄적으로 DSR 40%를 적용할 것도 유력하다. DSR 산정 시 전세자금 대출이 포함될지는 불분명하다.
한편, 금융당국은 지난 14일 올해 가계대출 총량 6% 대 증가율 목표에서 전세대출을 제외하기로 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은행 여신 담당 관계자들은 지난 주말 비공식 간담회를 열고 전세자금대출 새 관리 방안을 오는 27일부터 실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관리방안은 수요를 제외한 대출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 핵심이다. 5대 은행은 당초 알려진 대로 전세대출을 갱신할 때 임차 보증금 전액이 아닌 ‘증액 범위 이내’로 한도를 적용하기로 했다. 전세 보증금 잔금일 이후 전세대출을 막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