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승규의 모두를 위한 경제] 수요 늦추고 공급 당기는 주택정책

입력 2021-10-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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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오야마학원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 현 정부 초기부터 국토부가 주장했던 내용이다. 그러한 주장에는 저출산·고령화의 문제가 점차 심화되어 장기적으로 주택 수요 감소가 예견되고, 또 이미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이 100%를 웃돌기에 향후 수요 감소를 감안하면 대규모 신규 주택 공급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거가 뒤따른다. 비록 논거 자체는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그 논거가 주택 공급이 충분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주택 시장에서 누가 수요자이고 누가 공급자인지, 그리고 그들의 수요와 공급 시점에 대한 고찰 없이 막연하게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안일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개별 가구들의 생애주기별 주택 소유에 관한 의사결정을 생각해보면, 주택 시장의 상황과 관계없이 주택을 사고자 하는 그룹과 소유 주택을 처분하고자 하는 그룹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청년층은 주택의 주된 수요군을 형성하고, 소유 주택을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하고자 하는 노년층은 잠재적인 주 공급군을 형성한다. 청년층의 수요와 노년층의 공급이 항상 조화를 이룬다면, 주택시장 전체가 안정적인 장기균형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각 경제주체들의 시점 간 대체가 가능하다면, 특히 수요와 공급의 시점이 앞당겨지거나 미뤄질 수 있다면, 어느 특정 시점에서는 수요가 극단적으로 몰리고, 공급이 사라지는 현상이 연출될 수 있다.

청년층에서 노년층으로, 수요 측에서 공급 측으로의 생애주기별 역할 변화는 2019년 주거실태조사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연령대별 무주택 가구 비율은 20대 전후 청년 가구들 사이에서 거의 100%에 달하지만, 이후 급속히 하락하여 35~40세 가구들 사이에서는 40% 수준, 65~70세 가구들 사이에서는 최저점인 20%가 되고, 이후 40% 선까지 반등한다. 이는 20대 이후 무주택 가구주로 출발하여 노동소득과 대출 등으로 40세 전후에 내 집을 마련하고, 70세 이후에는 소유 주택을 처분하여 생계비를 조달하는 패턴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굳이 노년층으로 갈수록 얇아지는 인구구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노년층에서 무주택자 비율의 상승 추이가 미미하다는 점만 놓고 보면, 과연 현 시점에서 주택 공급이 충분한가에 대하여 상당한 회의가 제기된다. 의학의 발달로 수명은 점차 길어지는 가운데, 양도세 중과로 노년층이 보유한 주택들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시점이 자꾸 늦춰지다가 결국 상속으로 이어진다면, 현 시점에서 공급 물량이 줄어든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주택 공급의 공백기를 신규 주택 공급이 메워 주지 못한다면, 주택보급률과 상관없이 공급 부족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수요 측면에서도 20대 초반 청년층에서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주택에 거주하는 무주택 가구 비율은 95%를 웃돌지만, 이후 35~40세 가구들에서 그 비율은 20% 수준까지 급격히 떨어진다. 반면, 35~40세 가구들 사이에서 전용면적 60㎡ 초과 중대형 거주 유주택 가구 비율은 40%를 넘고, 중대형 거주 무주택 가구 비율도 20%에 달한다. 이는 아이들이 없거나 아이들이 있더라도 어린 청년 가구는 소형주택에 임차 거주하며 재산을 축적하여 내 집으로 중대형 주택을 장만하고자 하는 심정을 반영한다. 이렇게 본다면, 청년층에게 지금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 중대형 주택을 갭투자를 통해서 선취매하라고 자극한 것이 현 시점에서 ‘영끌바잉’이라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결국 경제주체들의 시점 간 대체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안일한 인식과 막연한 기대에 기반한 정책은, 유례 없는 수요 폭증과 공급 실종을 야기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수요를 미루도록, 그리고 공급을 앞당기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전자의 예로 40대 이후 혹은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 생애 첫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주택담보대출비율(LTV) 80~90%까지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후자의 예로는 노년층 가구가 장기 보유했던 중대형 주택을 매도하는 경우 양도세를 대폭 면제해 줌으로써 매도 시점을 당기도록 유도하는 방안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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