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우정도 국가보다 아래였다” 노태우와 전두환, 권력 앞에 갈라진 절친

입력 2021-10-26 17:12 수정 2021-10-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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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향년 89세
친구따라 쿠데타, 대통령, 감옥까지
우정 혹은 애증…전두환과 남다른 관계 눈길

▲(연합뉴스)
▲(연합뉴스)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 공판. 나란히 수의를 입은 두 중년 남성이 손을 잡았다. 12·12 쿠데타와 비자금 사건 등으로 역사의 심판 앞에 선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전두환이다.

법정 앞에서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우정을 자랑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우리는 우정과 동지애가 유난히 강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물론 그 우정은 세월과 권력 앞에 영원하지 못했다.

육사 동기…결혼식 사회 봐줄 정도로 돈독

▲육군사관학교 재학 당시 오성회 동료들과 기념촬영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 (연합뉴스)
▲육군사관학교 재학 당시 오성회 동료들과 기념촬영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 (연합뉴스)

그들의 우정은 육군사관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1952년 육사 제11기(정규 육사 1기)로 입학했다. 동향(同鄕)에 운동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전두환은 경남 합천 태생이나 어린 시절을 대구에서 보냈다.

육사 생도 시절 노 전 대통령은 럭비부에서, 전 전 대통령은 축구부에서 활동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전두환 대통령을 두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활동적 인물이었다. 우리는 우정과 동지애가 유난히 강했다”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 역시 ‘태릉 타잔’이라 불릴 정도로 몸을 잘 썼다. 두 사람은 전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결혼식 사회를 봐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12·12 쿠데타 주축…친구따라 대통령까지

▲1987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전 대통령이(왼쪽) 전두환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1987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전 대통령이(왼쪽) 전두환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1964년 3월 두 사람은 육사 출신의 결사 조직인 ‘하나회’를 꾸렸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주축이 됐다. 지금으로부터 42년 전 오늘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그들은 신군부를 이끌고 12·12 쿠데타를 벌였다.

쿠데타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이끌던 9사단 병력을 중앙청으로 출동시켜 신군부의 권력 장악 과정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980년, 전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노태우 전 대통령도 정계에 입문한다.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의 신임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한다. 정무장관에서 시작해 초대 체육부장관, 내무부장관 등 굵직한 자리를 도맡았다. 이후 민정당 대표위원 자리와 제12대 국회의원(전국구) 등을 거치며 본격적인 정치 인생을 걷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7년에는 전 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직선제 개헌 등을 약속하며 ‘보통 사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3김을 따돌리고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조금씩 금간 우정…나란히 수의 입고 철창행

▲1995년 10월 27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 (연합뉴스)
▲1995년 10월 27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 (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의 취임 이후 두 사람의 우정에 금이 간다. ‘5공 청산’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노 전 대통령이 조금씩 부응하면서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요구가 빗발치자 노 전 대통령은 그를 백담사로 보낸다. 사실상 유배였으나 그래도 노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의 구속만큼은 끝까지 막으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95년 겨울, 두 사람은 비자금 사건으로 모두 구속된다. 이후 12·12사태 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수사가 겹치면서 두 사람의 사이는 소원해진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전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을,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의 중형을 각각 선고받는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은 먼저 검찰 소환에 응해 구속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그렇게 쉽게 검찰에 가는 것이 아닌데 끝까지 버텼어야지”라면서 강한 불만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우정을 국가보다 상위에 놓을 수 없게 됐다. 인식의 차이로 해서 전임자는 나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면서 서운해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고 서술했다.

이후 두 사람은 2년 만에 출소했으나 노 전 대통령은 병세가 깊어져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2014년 전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병문안을 갔으나 이미 노 전 대통령은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자신을 알아보겠냐”는 전 전 대통령의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은 눈만 깜빡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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