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무진의 한반도와 세계] 노태우 정부 북방정책의 현재적 의미

입력 2021-10-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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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탈냉전 시기 사회주의 국가의 개혁개방에 맞추어 한반도에 드리워진 냉전적 질서를 탈냉전의 질서로 변모시키기 위한 자주외교의 의지는 노태우 정부 북방정책으로 나타났다. 냉전 시기 적대 국가로 존재했던 소련과 중국과의 관계를 협력적 관계로 전환시켰고 무엇보다 대결적 남북관계를 화해 협력의 관계로 변화시켰다. 1991년과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분단사에 있어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이룬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구한말 우리의 선조들은 개화기 제국주의의 여파 속에서 국제정세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문호를 적극적으로 개방하지 못하였다. 위정척사론과 개화론 속에서 국정의 중심을 잡지 못했고 종국적으로 일제 강점기의 치욕을 맞았다. 이러한 한국 근대사를 돌이켜보면 1990년대 북방정책은 탈냉전이라는 전 세계적 사변 속에 우리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려고 했던 자주외교의 노력이었음은 분명하다.

아쉬운 점은 이러한 북방정책이 적극적으로 평화와 통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남북한 상호 존중과 화해 협력을 바탕으로 남북연합을 통해 제도적 통일을 이루려 했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여전히 30여 년 동안 실현되지 못하고 남아 있다. 북방정책을 통해 전개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도 올해 30주년이 된다. 한·소, 한·중 간 수교는 했지만 북·미, 북·일 간 교차 수교는 이뤄지지 못했다. 자유화·민주화의 물결 속에 공산주의 국가들이 패망 혹은 체제전환을 이룬 것과는 달리 극심한 체제위기 속의 북한은 독자적 생존에 주력했다. 개혁과 개방이 아니라 유일 영도체제를 유지하고 NPT 탈퇴를 통해 위태롭게 핵개발을 추구하려는 북한의 미래를 국제사회는 희망적으로 보지 않았다. 곧바로 북한 체제 붕괴론이 득세했고 미국도 북한과의 적극적인 관계 개선을 모색하지 않았다.

만약 남북한 교차승인과 함께 북·미, 북·일 간 교차 수교가 이뤄졌었더라면 어떠하였을까. 북한을 보다 적극적으로 연착륙시켰더라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이 그러했듯이 북한은 체제 안전을 위해 핵개발을 하기보다는 핵개발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사실상의 남북한 통일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가까이 다가왔을 것이다. 체제 보위에 급급했던 북한의 잘못된 판단, 북방정책을 주도적으로 심화시키지 못했던 우리의 외교적 명암, 북한에 대한 주변 강대국들의 미래 비전의 부재 등은 지금도 매우 아쉽게 다가온다.

탈냉전 이후 고작 30년 지난 지금, 21세기 국제사회는 다시 미·중 전략경쟁의 갈등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 군비경쟁, 경제전쟁 속에서 진영 간 이합집산이 첨예해지고 있다. 북한도 최근 미국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입장을 두둔하면서 사회주의국가들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인 외교를 펼치고 있는 정부의 입장을 비판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한다.

어떤 해답을 찾아야 할까. 미·중 간 신갈등 속의 현실에서 우리는 다시 과거를 배운다. 북방정책은 탈냉전이라는 격변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 나가려는 평화공존정책이었다. 미·중 간 갈등이 첨예화될수록 우리가 한 진영에 매몰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중국, 러시아 등 다른 진영의 국가들과 외교적 소통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오로지 한반도가 다시 냉전의 대척점이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한반도가 냉전의 대결 무대가 될 경우 한반도의 분단극복은 더욱 요원해진다. 미·중 갈등 속에서 한반도 문제가 갈등의 의제가 아닌 협력의 의제가 될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야 한다. 한반도의 주인은 우리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에서도 독자성을 확보하여 남북 갈등이 미·중 갈등과 중첩되어 신냉전 구도에 매몰되게 해서는 안 된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부터 시작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만들어 낸 것은 우리가 국력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고 평화협력의 분위기를 주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혹자들이 종전선언 추진에 반대하는 이유도 적극적으로 상황을 주도해 나가고자 하는 자신감의 결여와 종전선언 이후 전개될 거대한 변화에 대한 저항과 두려움 때문이다. 북방정책의 쾌거와 우리의 자주적 의지가 새삼 다시 머릿속을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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