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회색 코뿔소’들 습격, 퍼펙트 스톰 어떻게 막나

입력 2021-11-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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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한국 경제가 직면한 최대 리스크로 ‘회색 코뿔소’와 ‘퍼펙트 스톰’이 부각된다. 비관적 경제학자들의 얘기가 아니다. 위기를 부정하고 낙관론에 치우쳤던 정부 경제정책 책임자들의 경고다.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라는 뜻이다.

회색 코뿔소(gray rhino)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말이다. 모든 코뿔소는 회색이다. 위협적인 존재이지만 몸집이 커 눈에 잘 띄고 움직임이 둔해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방심한 사이 가까이 다가와 돌진할 때에는 무거운 덩치와 날카로운 뿔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 경제의 알려진 잠재적 위험요인을 간과하다 손쓸 겨를 없이 당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전혀 예상 못한 리만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터진 것을 빗댄 ‘블랙 스완’(검은 백조)과 대비된다. 블랙 스완은 현실에서 거의 보기 힘든 희귀종이다.

더 직접적인 공포의 표현인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은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언급했다. 할리우드 영화 제목에서 따 온,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거대 폭풍이다. 금융과 실물이 겹친 경제의 초대형 복합위기를 뜻한다. 한계기업과 자영업자의 부실 확대, 거품상태인 자산가격 하락 등이 일시에 몰려와 다 파괴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한 것은 가계부채 위기다. 가계부채는 이미 우리 경제규모(GDP)를 넘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6월 말 가계신용 잔액은 1805조9000억 원으로 지난 1년 사이 168조6000억 원(10.3%) 불어났다. 증가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코로나19 사태로 금융완화가 지속돼 왔고, 집값 폭등에 따른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빚투’(빚내서 주식투자)가 두드러졌던 탓이다.

지나치게 늘어난 부채가 자산거품을 초래했고,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금리 상승기에 들어가면서 막대한 빚의 이자부담도 급증하게 된다. 다중채무자와 자영업자, 20∼30대 등 취약계층 중심으로 부실이 확산되고 실물경제 충격이 불가피하다. 우리 경제의 뇌관이다. 정부가 최근 가계부채 관리대책을 다시 내놓고, “단기에 갚을 수 있는 능력만큼만 대출 받으라”며 돈줄을 강도 높게 죄기로 한 배경이다.

이것 말고도 회색 코뿔소가 여럿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당장 글로벌 공급망 쇼크와 인플레이션, 미국의 긴축에 따른 금융불안 등이 몰려와 있다. 미·중 무역분쟁과 보호무역주의 확산, 코로나19 이후의 탈(脫)세계화로 그동안 국제분업 체제가 떠받쳤던 가치사슬이 무너졌다. 원유 등 에너지와 원자재 값이 치솟아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직격탄을 맞고, 최악의 전력 부족으로 가동을 멈춘 공장이 속출하고 있다. 국제적인 물류대란까지 덮쳤다. 인플레 압력이 갈수록 커지고 국내 물가도 무섭게 뛰고 있다.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년 만에 가장 높은 3%대로 치솟을 전망이다. 회복세를 타던 경제에 먹구름이 끼고, 물가 상승과 경기 후퇴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리스크도 크다. 너무 많이 풀린 돈을 회수하기 위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공식화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인플레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조기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경제와 금융의 폭탄이 될 수 있다. 대처할 마땅한 방도도 없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고령화, 급속한 잠재성장률 추락,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나랏빚,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기금 고갈도 코앞의 재앙이다. 한국의 작년 합계출산율은 인구 유지를 위한 최소치(2.1명)의 절반도 안되는 0.84명으로 이미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됐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225조 원이나 쏟아붓고도 막지 못하는 ‘인구절벽’이다. 나라경제의 기초실력인 잠재성장률은 2% 수준이다. 1990년대 7.5%에서 5년마다 1%포인트씩 떨어져 경제의 노화(老化)가 가속되고 있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성장이 멈추는 ‘제로(0) 성장’을 피하기 어렵다는 암울한 진단도 나온다. 그런데도 절실한 기업규제 혁파, 노동시장 개혁과는 계속 거꾸로 갔다.

정부의 빚인 국가채무는 내년 1000조 원을 넘는다. 팽창재정이 경기를 살리고 세수 증대로 이어져 경제 선순환을 이끈다는 궤변으로 청년들과 미래 세대가 세금으로 갚아야 할 빚 부담만 키웠다. 어느 나라나 경제위기는 부채에서 비롯됐다. 역대 정권이 크든 작든 한 번씩은 손댔던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개혁도 이 정부는 끝까지 외면하는 무책임으로 일관한다.

회색 코뿔소들을 방치해 결국 알고도 휩쓸리는 퍼펙트 스톰을 정부가 자초하고 있다. 잘못된 정책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실패만 거듭했다. 가장 큰 가계부채 문제도 엉터리 부동산정책이 만든 ‘미친 집값’의 영향이 크다. 총체적 무능이 빚은 위기다. 그 치명적 후폭풍이 시시각각 한꺼번에 닥쳐 온다. 차기 정부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kunny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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