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애국하려고 애 낳은 거 아닙니다

입력 2021-11-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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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를 낳고 1년 2개월 만에 복직했다. 출근 첫날 업무 파악을 하느라 한창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동료가 말을 걸었다.

“애국자네.”

그의 평소 성격을 알기에 ‘반가움을 에둘러 표현한 거겠지’ 생각하고 웃어넘겼지만, 사실 속으로는 골이 났다. ‘일하면서 어떻게 키울래?’라는 시선을 읽은 터였다. 그의 공감 없는 위로는 새벽녘 우는 아이를 시댁에 억지로 떼어놓고 온 워킹맘의 복잡한 심경에 더 큰 상처가 됐다.

애를 낳고 보니 키우는 게 일이다. 복직 전 퇴사를 고민했다. 당장 애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았다. 첫째를 봐주던 시어머님은 건강이 안 좋아지셨고, 에너지 넘치는 다섯 살 아이와 손 많이 가는 돌쟁이를 함께 봐줄 베이비시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결국 시아버님께서 일을 정리하셨다. 우리 부부는 죄인이 됐다.

속 사정이야 어찌 됐든 그나마 기댈 언덕이 있는 난 복에 겨운 편이다. 워킹맘 10명 중 9명은 퇴사를 고민한다. 그중 절반은 실제로 회사를 떠난다. 코로나 시국은 이런 고심을 더 부채질했다.

올해 4월 인구보건복지협회가 9세 이하 자녀를 둔 워킹맘 1000명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는데, 52%가 돌봄 공백을 경험했다고 한다. 대부분은 조부모 손을 빌렸고, 학원 ‘뺑뺑이’로 시간을 메웠다. 맡길 데가 없어 하루 종일 텔레비전이나 유튜브 등을 보여줬다는 응답자도 꽤 됐다.

일하는 게 죄도 아닌데, 워킹맘들은 미안하단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더 챙겨 주지 못해, 더 놀아 주지 못해 늘 마음이 쓰인다. 퇴근 후 엉덩이 한 번 붙이지 못하고 아이들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집 안 정리한 뒤 자정이 돼야 눕는 게 일상이다.

그럭저럭 견뎌내며 ‘난 괜찮아’라고 자기 최면을 걸지만, 팬데믹으로 학습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일을 그만두면 상황이 달라질까, 그럼 학원비는 어떡하지’란 생각을 한다.

이런 이유로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 ‘초등 교사가 본 워킹맘의 현실’이란 글은 일하는 엄마들의 공감을 얻었다. 꾸역꾸역 버티던 워킹맘들이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일을 그만두는 이유를 적었다.

요약하면 정오에 하교하는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돌봄교실에 그저 앉아만 있는 아이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결론은 ‘아이를 낳지 말아라’이다.

우리나라 저출산 대책은 대부분 낳는 것에 집중돼 있다. 곱씹어 보면 나도 임신부터 출산까지 돈 들 일 없었다. 되레 남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아이를 낳는 부모는 없다. 믿을 만한 공적 돌봄은 턱없이 부족하고, 아이 하원할 때 퇴근하는 유연근무제는 눈치가 보인다. 초등학교 입학까지 돌보려면 육아휴직도 짧다.

관청이 몰려 있는 세종시의 출산율(1.28명)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건 특별한 이유가 없다. 이제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공적 돌봄을 늘리고, 유연근무제도 활성화해야 한다. 민간기업의 ‘3년 육아휴직’도 고려해 볼 만하다. 그보다 먼저 ‘출산=애국(극한의 이타심을 요구하는)’이란 일부 인식부터 버려야 한다. 적어도 난 그 말이 듣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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