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2004년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씨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에 대한 기대 반 우려 반의 소감을 이같이 말했다. 씨티은행은 한국 영업망을 미국을 제외한 세계 최대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한국 금융산업이 손쉬운 부동산 담보 대출에만 의존하고 경쟁보다는 상호 기득권 유지에만 안주했던 터라, 씨티은행이란 막강한 상대를 두려워했다.
한국씨티은행이 개인고객과 거래한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 개인자산관리(PB·프라이빗 뱅킹)를 국내에 도입한 PB 원조다. 외국은행을 선호하는 고객들의 심리가 강해 씨티은행과 거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쭐하던 시절이이었다. 예금과 투자상품 등 10억 원 이상 자산을 운용하는 VVIP 고객은 ‘씨티 프라이빗 클라이언트(CPC)’로 분류했다. 전담 직원이 여행이나 공연 등을 추천하고 예약까지 해주는 ‘컨시어지(관리인)’ 서비스로 발전하기도 했다.
한국씨티은행의 막강한 힘은 2008년 금융위기 때 절정을 보였다. 한국이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당시 하영구 은행장의 중재자 역할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씨티그룹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우리 정부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씨티그룹을 이끌던 로버트 루빈 회장은 재무장관을 지낸 거물이었다. 윌리엄 로즈 부회장은 뉴욕연방은행 총재와 가까운 사이였다. 한국씨티은행의 인맥이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발판이 된 것이다.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과 처음으로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를 맺어 금융시장 안정에 큰 효과를 봤다.
이러한 한국씨티은행이 이익률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소비자금융을 단계적 폐지 결정을 했다. 우리 금융산업에서도 PB사업이 보편화되면서 이익이 줄어들자, 소비자금융 간판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국내 소비자금융 시장에서 돈 냄새가 사라지자,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싶다.
한국 씨티은행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당기순이익은 7895억 원 규모다. 미국 대주주에 보낸 배당금은 1조933억 원에 이른다. 벌어들인 돈보다 두 배가 가까운 많은 돈을 본사에 줬다는 뜻이다. 배당성향이 100%를 넘는다는 것은 한국에서 거둔 수익 이상의 돈이 고스란히 미국 본사로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도 국내 은행 같으면 팔을 비틀어서라도 고배당을 억제했겠지만 외국 회사이니 강제할 수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한국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 철수는 5년 전부터 결정이 난 듯싶다. 2017년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영업 점포 126개 가운데 무려 90개를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고객 95%가량이 금융 서비스를 디지털 채널을 통해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영업점 운영의 실익이 없다는 것이었다. 디지털 혁신에 가까운 우리 금융시장의 변화를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영업 점포를 80%나 줄인다는 것은 은행의 공적 기능을 버리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금융산업은 그 자체만으로 제도적 수혜를 누리는 업종이다. 최소한의 공적 기능도 부담하지 않는 은행에는 제도적으로 발생되는 수혜 또한 부당하다는 말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소비자금융 단계적 폐지를 발표하면서 금융상품 사후 관리 방안을 밝혔지만 기존 대출 연장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특히 신용대출은 금융당국 가계부채 규제 등으로 다른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많이 높인 상황에서도 상당히 높은 대출 한도를 부여해 최근까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부동산 매수), 빚투(빚내서 주식 투자) 수단으로 많이 활용됐다. 씨티은행 신용대출 이용자들은 은행이 기존 대출 연장을 해주지 않을 경우 애가 탈 노릇이다. 한국씨티은행의 총여신은 24조3000억 원이다. 이 중 소비자금융, 일반 개인 고객에게 빌려준 돈이 전체의 약 70%, 16조9000억 원이다.
일선 영업점을 대규모로 문 닫고, 고액 자산가 위주의 자산관리센터를 확충했던 한국씨티은행이다. 이익 극대화를 위해 금융의 공적 기능을 최소화하고, 미국 본사에 대한 고배당 등 사적 기능은 확대했던 한국씨티은행이다. “외국계 은행도 책임과 고통을 분담하기 바란다”라고 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발언이 오늘 한국씨티은행에 적합하다. ac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