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먹거리 민주주의를 위하여

입력 2021-11-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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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행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장

“농사를 짓는 일이 지구와 사회를 건강하게 한다는 생각에 힘은 좀 들어도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며 행복하게 지내 왔다. 근래 들어 이상기후가 잦아져 농사 때를 맞추는 게 조마조마한데,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농사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몇몇 생산자들과 기후위기와 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온라인으로 나누던 중 한 농민의 고백이다. 20여 년 전 귀농하여 농촌을 지켜 온, 가능한 한 친환경으로 가족농 규모의 농사를 지어 온 그이다. 그의 노동에 감사하고 자부심을 지켜주는 것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내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이다. 그 자리에서는 위기상황을 생산자, 소비자가 함께 헤쳐 나가자는 뻔한 말밖에 못 했지만, 그의 자존감을 북돋워 주고 농민들의 전환에 대한 고민과 실천의지를 느끼고 뭔가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늘상 일깨워주는 것이 먹거리이고 농(農)이다. 지구에 살아가는 생명인 한 본질적인 인간 존재의 의미이리라. 이 당연한 걸 새삼 의미 부여하려니 오히려 갑갑해지는 게 현실이다. 그 현실에서는 먹거리 체계가 산업화·상품화되어 경제생산 지수로 평가되고 관리되고 있다. 먹거리 그 자체의 필요와 분배가 아닌 생산으로부터 가공, 유통, 소비에서 폐기에 이르는 단계와 관련 분야를 분화하여 부가가치를 평가하고 자본의 수익을 보호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의 먹거리 체계이다. 이 즈음은 그 선택으로 먹거리의 물질적 풍요가 펼쳐진 듯 보이나 그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농은 인류가 정착생활을 한 이래 인간생활의 전 영역을 포괄해 왔다. 현대사회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는 농으로부터 분화 파생된 상품이다. 그리고 농은 가치평가가 절하되었다. 농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로 편입되면서 농산물이라는 상품의 생산으로 축소되어 왔고, 생산과 소비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더욱 멀어졌다. 이제 생산과 소비를 이어주는 것은 자본제 상품관계이며 이러한 농식품 체계를 확장하고 성장하는 데 화석연료의 절대적 활용이 있었다. 화석에너지에 기반하여 성장한 자본재 상품관계인 글로벌 농식품 체계는 양적 번영을 가져다 주었으나, 농의 본질인 인간-자연-공동체-세대의 순환과 흐름을 단절·왜곡시키고 농의 주체들을 상품에 복속시켰다. 그 과정에 비만과 기아, 산지 폐기와 음식쓰레기의 범람, 조작적 가공과 영양불균형, 지역과 계층의 양극화 등 먹거리 위기가 누적되었다.

이를 극복하고 본래적 관계를 회복하여 사람-땅-하늘의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관계, 궁극에 기후위기로까지 비화된 자본-상품관계를 넘어서려는 실천으로 공공재 논의, 식량주권, 먹거리기본권 등 관계 회복을 위한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먹거리기본권은 식량주권의 또 다른 표현이다. 생산과 소비관계를 회복적으로 이어주는 역할이 중요하다. 식량주권은 ‘환경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되고 문화적으로도 적합한 식량에 대한 민중들의 권리이며, 또한 민중들이 그들의 고유한 식량과 농업 생산 체계를 결정지을 수 있는 권리이다. 식량주권은 식량체계와 정책의 중심을 시장과 기업의 요구가 아니라 생산과 공급, 소비를 하는 사람들을 최우선으로 하며 동시에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다.’(닐레니 선언, 2007)

취약계층뿐 아니라 생애주기에 따른 건강한 먹거리 돌봄이 가능하도록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고 국가와 지역은 먹거리 종합전략을 수립하여 수행하도록 먹거리기본법을 제정하자는 것이 먹거리기본권 운동이고, 대선 공약으로 떠오르고 있다. 먹거리위기, 기후위기 상황은 먹거리·농업의 국가적·사회적 역할과 위상을 성찰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9월 발표한 국가식량계획이 관료 중심 결과물이란 지탄을 받거나, 탄소중립위원회 논의과정과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 대통령이 가서 보고한 탄소중립방안에 대해 기후행동 집회가 벌어지는 상황은 여전히 정치 관행적 접근방식 때문이다. 시대적 과제의 원인과 전환의 주체가 누구인지 깊이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먹거리위기, 지역위기의 상황은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한다.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그 대의체계로 우선 대선을 앞두고 있다. 본격적인 정책 논쟁을 지켜보고 참여하며 먹거리 민주주의를 열어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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