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이 은행연합회에 가상자산 커스터디(수탁) 관련 부서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상자산이 제도권에 포섭되고, 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은행연 고위 관계자는 10일 “KB국민은행, 신한은행, NH농협은행이 은행연에 가상자산 커스터디 관련 부서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며 “증권형토큰(STO) 등 사업으로 확장될 소지가 크고, CBDC 등 가상자산이 활성화되면 은행 예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 고위 관계자 또한 “가상자산 시장이 열리면 기존 금융권에서 어떻게 진출해야할지 고민이 많은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 은행법상 시중은행이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을 직접 수행할 수는 없다. 은행이 가상자산을 취급하기 위해서는 은행법상 취급가능 업무범위거나 부수업무·겸영업무에 포함돼야 한다. 현행법상 근거가 없어 가상자산 취급 자체가 불가능하다.
가상자산이 신시장으로 떠오르지만 직접 사업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은행연에 사업 부서 신설을 요청한 것도 커스터디사를 통해서가 아닌 직접 관련 내용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상자산이 곧 법 테두리 안에 들어올 것으로 보고 있다”라며 “손 놓고 있다가 나중에 시작이 돼버리면 늦으니 은행들이 다 준비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시중은행이 가상자산 커스터디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로 비이자이익의 개선이 꼽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인 시장의 경우 전체 규모는 작지만 거래가 굉장히 잦아서 비이자이익의 개선이 가능하다고 본다”라며 “가상자산을 보관하면서 발생하는 이익 등 연구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거래소보다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도 한몫했다. 업비트·빗썸 등이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에서 철수한 것으로 기관 투자자들의 낮은 참여가 이유로 꼽히는데, 은행은 기관 투자자들에게 비교우위를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은행에서는 업력으로 쌓아온 신뢰가 있어 유리한 부분이 있다”라며 “거래소도 수요가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존 금융에서 작정하고 달려들면 간격을 좁히는 건 일도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을 통해 어느 정도의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는 과제로 남았다. 가상자산을 굳이 커스터디 서비스를 통해 은행에 맡기기보다 개인 투자의 영역으로 남겨놓는 경우가 많아서다.
업계 관계자는 “가상자산이 법제화 테두리에 들어오면 시장이 쪼그라들지, 더 폭발적으로 성장할지 아직 실체가 없다”라며 “수수료 산정 등 아직 해결해야 할 내용들이 많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