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세 제도 중 기업현장과 동떨어져 활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경영환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 많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336개 기업(대기업 110곳, 중소기업 226곳)을 대상으로 ‘기업현장에 맞지 않는 조세제도 현황’을 조사해 ‘기업현장과 괴리된 10대 조세제도’를 14일 발표했다.
기업들은 조세 제도가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응답 기업의 81.3%가 신성장 기술이 시행령에 즉시 반영되지 않아 세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는 공제 대상인 신기술을 우리나라보다 폭넓게 인정하고 연구ㆍ개발(R&D) 활동에 대한 세제 지원도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고도신기술산업’에 대한 R&D 우대지원 대상을 2015년 가능한 것만 나열하는 방식에서 안 되는 것만 나열하고 그 외에는 모두 가능한 방식으로 바꿨다.
일부의 편법을 막기 위한 칸막이식 조세 지원이 제도 활용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신성장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신성장 R&D 전담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응답자의 70.5%는 중소기업은 동일 인력이 신성장 R&D와 일반 R&D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아 활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 캐나다 등은 신성장 R&D ‘전담인력’과 같은 요건을 두지 않고 실제 R&D 활동 여부를 검증해 해당 인력이 투입된 시간에 따라 연구개발 비용을 산정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작년 일반 R&D 조세 지원을 신청한 기업은 약 3만4000곳으로 신청비율이 99.4%에 달했지만, 신성장 R&D 조세 지원은 197곳, 0.6%로 매우 저조했다"라며 "신성장 투자를 늘리자는 제도취지에 맞게 하루빨리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응답 기업들은 활용하기 어려운 조세지원제도의 또 다른 예로 △경력단절여성 채용 시 동일업종 경력자인 경우만 공제(72.3%) △ 신산업 인프라 구축 등 전국적 투자가 필요한 경우도 수도권 설비투자는 지원 제외(65.5%) △연구소 보유한 기업에만 R&D 공제해줘 연구소가 불필요한 서비스업 등에 불리(61.6%) 등을 꼽았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세법상 규제로 불편을 호소한 기업도 있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는 부의 편법적 이전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외국에서도 유사한 입법례를 찾기 힘들다. 또한, 계열사의 관련 특허 보유 등으로 내부거래가 불가피한 경우에도 일감몰아주기 증여세를 부과하는데 이는 기업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답한 기업이 72.9%에 달했다.
가업 상속공제의 경우 7년간 중분류에서 동일 업종을 유지해야 하고, 가업용 자산의 80%를 유지해야 하는데 응답 기업의 64.3%는 이러한 요건들이 산업 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업상속 후 업종 변경을 제한하는 나라도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응답 기업들은 이런 조세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과제로 ‘세법 관련 현장 의견 수렴 및 소통 강화’(98.5%)를 가장 많이 꼽았다. ‘경쟁국보다 불리한 조세제도 연구 및 정비’(95.2%), ‘제도는 유연하게 설계하되 탈세 등 처벌 강화’(93.8%), ‘세제 지원 대상을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변경’(78.6%) 등도 많았다.
송승혁 대한상의 조세정책팀장은 "이번 조사를 통해 기업현장에 맞지 않는 조세제도 사례를 파악할 수 있었다"며 "조세제도는 특히 이해당사자가 많고 복잡해 개정이 쉽지 않겠지만, 현장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고 주요국 사례를 참고해 기업환경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재설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