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은 AI(인공지능), AR(증강현실) 등 첨단 산업의 가장 밑바탕에서 이 산업들이 구현될 수 있게 해주는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삼성전자는 높은 시장 점유율을 수성하는 것뿐 아니라 전체 반도체 산업에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을 내놓고, 이를 통해 산업 생태계를 건전하게 만들 것이다.”
17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사는 전날 국내외 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삼성 인베스터스 포럼(Investors Forum)에서 이 같은 전략을 발표했다.
올해 포럼의 주제는 △메모리 △파운드리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스마트폰을 비롯한 갤럭시 에코 시스템 △통신장비로 꾸려졌다. 매년 사업 진척 상황에 따라 주제는 유동적으로 바뀐다. 재작년 포럼은 5G와 스마트폰,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위주로 꾸려졌고, 지난해엔 메모리와 파운드리, 시스템LSI, 폴더블폰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올해 반도체 산업 발표 중심은 ‘초격차를 위한 압도적 기술력’에 있었다. 과거 진행된 포럼에서도 기술 로드맵을 항상 밝혀오긴 했지만, 올해 포럼에선 경쟁사를 우위로 따돌릴 수 있는 기술 발전 방향에 대해 오랜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D램 분야에선 업계 최초로 적용한 극자외선(EUV) 기술력을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EUV를 적용한 14nm(1나노미터=10억 분의 1m) D램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양산 중이다.
EUV를 적용한 D램은 원가 경쟁력과 생산력 제고 면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EUV 적용 시 이전 공정 제품보다 많게는 300%에 달하는 원가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EUV를 적용하지 않은 14~15나노 D램 공정 수가 1000개에 달했지만, EUV를 적용하면 이를 800개까지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EUV가 차세대 D램 제품 개발의 핵심이라고도 했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14나노 D램 램프업(수율 향상) 속도가 애초 예상과 비교해 굉장히 빠르고 양호하다”라며 “이런 발전 속도를 통해 10년 안에 5나노 이하 제품을 소개하게 되길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달 열린 3분기 실적발표에서도 “14나노 D램 수율 향상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라고 강력하게 말했는데, 이러한 입장을 다시금 반복한 것이다. 14나노 제품 생산 수율과 관련한 시장의 우려를 적극적으로 불식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EUV 장비 도입과 더불어 CXL(Compute Express Link) 인터페이스 적용도 강조했다. CXL은 AI, 머신러닝, 빅데이터 등 고성능 컴퓨팅 시스템에서 서로 다른 장치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제안된 차세대 인터페이스다. 삼성전자는 서버용 D램 탑재량이 슈퍼컴퓨터 수준인 1테라바이트(TB)까지 늘어나는 추세임을 언급하면서, CXL 기반 D램을 적용하면 시스템의 메모리 용량을 획기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낸드 분야에선 '1000단 V낸드 시대'를 언급하며 삼성전자가 이를 주도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를 위한 기술로는 QLC(셀당 4비트) 저장방식을 언급했다. 메모리 셀 1개에 2개(MLC) 혹은 3개(TLC)의 비트를 저장하던 걸 4개까지 늘려 저장용량을 33% 확대하는 식이다. 현재 낸드 시장에선 적층 경쟁이 치열하지만, 이로 인한 셀 간의 간섭 현상 등 반작용을 줄여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업계에선 떠오르고 있다.
파운드리 사업에선 반도체 업계를 주도해온 기존 핀펫 기술과 다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반 3나노 양산을 앞세웠다. GAA 기술은 전력효율, 성능, 설계 유연성을 가지고 있어 공정 미세화를 지속하는 데 필수적이다.
경쟁사인 대만 TSMC는 GAA가 아닌 기존 핀펫 구조를 기반으로 한 3나노 양산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즉, GAA 적용 3나노 공정은 삼성전자엔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을 획기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중대한 변곡점인 셈이다.
또한 한승훈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전무는 최근 거론되고 있는 미국 파운드리 2공장을 언급하며 조만간 투자 계획이 가시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2공장 후보지 중 한 곳으로 거론되던 오스틴 시 신청이 취소되면서, 파운드리 공장 부지는 테일러 시로 기정사실로 되는 양상이다. 기존 공장과 테일러 시의 거리는 차로 1시간(약 60㎞) 정도로 멀지 않다.
발표 이후 이어진 비공개 질의응답에서도 미국 신규 공장 증설의 정확한 시기, TSMC와의 점유율 격차 축소 여부에 대한 질문이 다수 이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포럼에서 삼성전자는 이와 같은 물음엔 확답하지는 않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부터 북미 출장 중인 상황이라 조만간 투자 확정 소식이 들려올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