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디지털 세계와 호흡하는 ‘삶의 예보’

입력 2021-11-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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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기상청장

영화 ‘아바타’의 주인공 제이크는 사고로 인한 하반신 마비로 걷지 못한다. 그런 제이크가 나비족의 외형을 한 아바타를 통해 가상현실과 같은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현실세계의 육체적 한계를 넘어 판도라 행성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 발끝에서 전해지는 흙의 촉감에, 제이크는 벅찬 감동과 환희를 맞이한다.

이처럼 누구나 한 번쯤은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계와 다른 또 다른 세계가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아닌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다른 공간이 있다고 말이다. 내가 사는 세계와 완전히 똑같은 세계가 있고, 그곳에 나와 똑 닮은 내 아바타가 사는 세계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최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것이 더 이상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바로 ‘메타버스’의 등장이다. 메타버스는 ‘나를 대변하는 아바타가 생산적인 활동을 영위하는 새로운 디지털 지구’라고 표현할 수 있다. 코로나 19 상황으로 대면 접촉이 어려워진 지금, 기존에 대면으로 이루어지던 입학식, 축제, 공연 등이 메타버스라는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메타버스의 다양한 기술 중 현실을 가장 잘 묘사하는 것은 디지털 트윈이다. 디지털 트윈은 가상공간에 실제와 똑같은 쌍둥이를 만들어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검증하는 기술을 말한다.

디지털 트윈이 구축되기 위해서는 관측, 운영, 최적화 그리고 예측 네 가지 속성이 갖추어져야 한다. 기상청은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인정한 100년 기상관측소를 두 곳이나 보유하고 있고, 기상관측망 밀도 또한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수준으로 우리나라의 방대한 기상기후 자료를 가지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의 자동기상관측장비(AWS), 기상레이더, 기상위성 등 총 17종 833개의 기상청 관측장비에서 실시간으로 기상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관기관의 기상관측장비, 항공기 관측자료, 세계기상통신망 자료 등을 더하면 데이터량은 훨씬 방대해진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를 품질관리하고 가공하여 ‘한국형 수치예보모델(KIM)’에 적용하고, 그 기상예측 결과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지형도와 건물을 포함한 3차원 지리정보시스템(GIS) 지도에 데이터베이스화된 기상기후 관측자료를 융합하여 하나의 가상세계에 나타내면,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 매우 유사한 ‘쌍둥이’를 만들 수 있다. 한반도 영역의 지상에서 고층까지 기상 정보를 수치화하여 가상 공간에 ‘기상기후 디지털 트윈’을 구성하는 것이다. 여기에 지상의 도로정보, 도시 피복도 등을 더한다면 보다 현실에 가까운 가상세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기상기후 디지털 트윈을 활용하면, 기존에 제공하는 개별적인 기상관측 자료와 날씨 정보를 넘어 누구나 손쉽게 자료를 가공하거나 융합하여 활용할 수 있다. 신재생 에너지 사업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누적된 일사자료와 바람장을 활용해 어느 지역에서 태양광 에너지와 풍력에너지 효율이 높을지 예측하고 사업성이 높은 지역에 발전소를 설치할 수 있다. 헬기와 도심항공교통(UAM) 등 저고도 운항 항공기는 상세한 3차원 바람장을 활용해 위험기상 발생 구역을 피해 안전한 운항을 할 수 있다. 특히 방재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데, 디지털 트윈 속에서 홍수, 폭염, 한파 등에 대한 분석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재난 취약 지역에 대한 사전 대비가 가능할 것이다.

현실의 한계를 넘어선 디지털 세계의 구현은 현재를 더 넓게 바라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앞으로는 기상현상과 기후변화가 우리 삶에 주는 영향에 대해 상상하는 것에서 벗어나,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현실을 분석하고 이를 사회 각 분야에 적용해 미래를 대비하는 디지털 기상기후서비스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상청이 제공하는 정보가 단순히 ‘일상의 예보’를 넘어 디지털 세계와 호흡하는 ‘삶의 예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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