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여경 무용론' 자초한 경찰

입력 2021-11-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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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부 기자

"이날 여도 수군 황옥천이 집으로 도망간 것을 잡아다가 목을 베어 군중에 높이 매어 달았다." (난중일기)

왜군을 앞에 두고 등 돌려 도망간 부하를 엄히 다스린 이순신.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이 있었기에 조선 수군은 위기속에서도 기강을 유지했다. 국민과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흔들리자, 규율로 바로 세웠다.

경찰의 사명감도 과거 조선 수군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조직의 태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

강력범죄가 있는 곳은 전쟁통과 다를 바 없다. 이 상황에서 일부 경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대신 제 한 몸 건사하기 바빴다. 최근 ‘인천 흉기 난동 사건' 당시 출동한 여경은 칼에 찔린 피해자를 두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동행한 남경 역시 칼을 든 난동자를 제압하지 않았다. 경기도 양평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흉기를 든 사람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다른 경찰들이 3단봉으로 거리를 벌렸다 좁히며 대치하는 사이, 여경이 등을 돌려 시민보다 멀찍이 몸을 피했다.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여경 무용론'이 다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일부 남성과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가 여경 혐오를 부추겼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여경 무용론'에 동의할 수 없지만, 왜 이런 주장이 나오는지 근본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범인을 제압하지 못한 경찰을 비판한다고 혐오가 시작됐다는 식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여경 무용론'의 핵심은 능력 없는 경찰이 많아졌으며 시민의 안전을 지킬 의지가 없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됐다. 경찰 조직 내에서는 "월급 300만 원에 목숨을 걸어야 하느냐", "여경이 칼을 든 남자 앞에서 뭘 할 수 있느냐"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온다고 한다.

'여경 무용론'은 경찰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다. 현장에서 범인을 제압해야 하는 특성상 일반인보다 높은 수준의 체력과 신체적 능력이 필요하지만 내부에서는 엉뚱한 소리를 한다. 경찰청 성평등정책담당관은 "100m 달리기, 팔굽혀펴기 등이 경찰 업무에 정말 필요한 역량인지 살펴봐야 한다"며 해괴한 주장을 폈다. 경기도 양평 사건 팀장은 "왜소한 여경이 육박전이라도 해야 근무를 잘하는 것이냐"며 옹호하기 바빴다.

모든 경찰이 완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에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수사와 대민 업무, 행정서비스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경찰은 언제든 범인과 목숨을 걸고 대치할 수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제압해야 할 대상을 앞에 두고 자리를 뜨거나 등을 돌려 도망가는 태도는 더욱 용납할 수 없다. 경찰 선발 과정에서 신체적 능력은 물론 사명감도 까다롭게 검증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은 상식적인 경찰을 원한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의 '경찰의 임무'에 나온 그대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범죄 예방과 진압, 수사에 힘쓰는 경찰 말이다. 이 일을 할 자신이 없고, 적당히 월급만 받을 생각이라면 옷을 벗는 게 맞다.

국민은 남경, 여경이 아닌 '경찰다운 경찰'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과 훈련으로 능력을 배양하는 동시에 의지가 없는 직원에는 엄격한 규율을 들이대야 한다. 부하의 목을 벤 이순신 장군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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