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탄소 중립, 공학계 의견 반영한 거시적 안목이 절실합니다”

입력 2021-12-09 16:00 수정 2021-12-0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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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순 르노삼성 중앙연구소장

우리가 자주 탄소 중립을 이야기하잖아요.
그때마다 자동차 ‘배기 파이프’만 들여다보면서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나오느냐 집중하고 있어요.
그런데 차 생산하는 공장에서도 탄소가 나오잖아요. 운행할 때도 나오고…,
심지어 차를 폐차할 때에도 탄소가 쏟아집니다.
이 모든 걸 따져보고 이걸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진짜 탄소 중립이 가능하다는 거죠.

▲1994년 입사한 권상순 르노삼성 중앙연구소장(부사장)은 르노삼성 R&D의 역사나 나름없다. 르노삼성의 모든 차들이 그의 손을 거친 셈이다.  (신태현 기자 holjjak@)
▲1994년 입사한 권상순 르노삼성 중앙연구소장(부사장)은 르노삼성 R&D의 역사나 나름없다. 르노삼성의 모든 차들이 그의 손을 거친 셈이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야기보따리가 쉼 없이 쏟아진다. 대부분 우리가 몰랐거나 간과했던, 심지어 ‘아차!’ 싶었던 내용도 있다.

그는 그렇게 ‘깐깐할 것’이라는 편견을 성큼 밀어내고 다가왔다.

깐깐하기는커녕 마주 앉은 사람을 위해 어려운 기술용어를 쉽게 풀어내는 배려심마저 지녔다.

지난 3일 경기도 용인 르노삼성 중앙연구소에서 르노삼성자동차 중앙연구소장 권상순 부사장을 만났다.

◇1994년 삼성차로 입사한 르노삼성 R&D의 역사

이제껏 만나본 자동차 공학자 대부분이 날카롭고 예리한 이미지였다.

이들의 분위기는 두꺼운 안경과 그 너머에 자리한 매서운 눈빛, 좀처럼 자기 주관을 굽힐 줄 모르는 고집 등으로 점철돼 있다.

공학자, 그것도 자동차 공학자의 삶 자체가 그렇다. 자동차 회사 기술연구소는 정문을 넘어서는 순간, 철옹성 같은 보안이 생명이다.

연구원의 삶 자체도 긴장의 연속이다. 먼저 정해진 시점까지 연구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머리를 쥐어짜 내며 개발한 결과물을 검증하고 또 검증한다. 안전에 직결된 문제인 까닭이다.

결과물이 나왔다고 안심할 수 없다. 이 결과물을 들고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 가까이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여기에서 승패가 갈리기도 한다. 수년 동안의 연구개발 결과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삶 자체가 예민해질 수 있다.

이런 편견을 걷어내고 다가온 권 부사장은 풍부한 경험과 넘치는 공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개발 전략을 논리 정연하게 풀어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오롯하게 르노삼성자동차 연구개발의 역사이기도 하다.

서울대 공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고, 1994년 삼성자동차 중앙연구소에 입사한 그는 이후 30년 가까이 르노삼성에 몸담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른바 ‘삼성차와 르노삼성차’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친 셈이다.

지난달에는 또 하나의 막중한 책임도 맡게 됐다. 바로 한국자동차공학회 신임 회장에 선출된 것. 이제 르노삼성을 넘어 대한민국 자동차 공학계의 대표 석학으로 인정받게 됐다.

▲글로벌 르노 그룹 내에서 한국은 뚜렷한 연구개발 역량을 입증하고 있다. 고급차와 SUV 분야에선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 대표적인 사례가 XM3(수출명 아르카나) 개발이다. 러시아산은 보급형으로 러시아 현지에서만, 한국산은 고급형 모델로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전역에서 팔린다. 사진은 프랑스에서 하역 중인 아르카나의 모습.  (사진제공=르노삼성)
▲글로벌 르노 그룹 내에서 한국은 뚜렷한 연구개발 역량을 입증하고 있다. 고급차와 SUV 분야에선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 대표적인 사례가 XM3(수출명 아르카나) 개발이다. 러시아산은 보급형으로 러시아 현지에서만, 한국산은 고급형 모델로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전역에서 팔린다. 사진은 프랑스에서 하역 중인 아르카나의 모습. (사진제공=르노삼성)

◇XM3 개발 주도하며 한국 R&D 입지 강화

르노의 한국 내 사업장은 두 곳이다. 우리에게 친근한 르노삼성자동차, 그리고 글로벌 르노의 주요 모델을 연구ㆍ개발하는 ‘르노 테크놀로지 코리아(RTK)’가 존재한다.

르노는 글로벌 주요 곳곳에 연구개발 거점 7곳을 두고 있다. 이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곳이 권 부사장이 책임을 맡은 한국의 RTK다.

120년 역사를 지닌 르노는 이미 ‘소형차’ 개발에 있어서 경지에 이르렀다. 유럽시장 베스트셀링 해치백 ‘클리오’가 이를 증명한다.

RTK는 르노 그룹에서 고급 세단과 SUV 개발을 담당한다. 이 분야에서는 한국이 더 많은 노하우를 갖췄다는 걸 르노 본사도 인정한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으나 현재 르노가 추진 중인 글로벌 중형 SUV는 한국의 RTK가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XM3 개발도 좋은 사례다. 현재 주력 모델로 성장한 XM3는 한국의 RTK가 개발을 마무리했다. 권 부사장 역시 그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이다.

“XM3 파워트레인과 전체 레이아웃은 프랑스 본사에서 주도했습니다. 출시 전에 수요층을 대상으로 정밀한 시장조사(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했는데, 여기에서 여러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때부터 XM3 앞뒤 디자인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이 시작됐는데 이 프로젝트를 한국 디자인 센터에서 진행했어요. 우리가 디자인한 것이라고 봐야 하죠.”

여기에 그치지 않고 차 안에 담긴 첨단 커넥티비티 시스템, 예컨대 차 안에서 결재가 가능한 ‘인-카 페이 시스템’을 포함한 다양한 IT 기술을 개발해 XM3에 심었다. 르노 본사에서도 인정한, 이른바 ‘와우 포인트(Wow Point)’ 가운데 하나다.

▲XM3는 디자인을 비롯해 차 안에서 결제가 가능한 '인-카 페이' 시스템 등을 한국에서 개발했다. 앞으로 '웰빙'을 주제로 한 다양한 첨단 기능이 속속 등장할 예정이다.  (사진제공=르노삼성)
▲XM3는 디자인을 비롯해 차 안에서 결제가 가능한 '인-카 페이' 시스템 등을 한국에서 개발했다. 앞으로 '웰빙'을 주제로 한 다양한 첨단 기능이 속속 등장할 예정이다. (사진제공=르노삼성)

◇르노삼성의 첫 친환경 하이브리드 막바지 개발 중

나아가 ‘자동차 안의 웰빙’을 앞세워 르노 그룹의 신차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수행 중이다.

산업발전 동향과 고객 관점에서의 시장 방향을 고려해 미래 자동차가 가져야 할 모습과 기능에 대해 주제별로 연구 중인데 이른바 ‘웰빙’이 그 가운데 하나다. 친환경 소재 개발을 시작으로 우리 삶의 가치를 끌어올릴 다양한 아이디어가 RTK에서 쏟아지는 중이다.

한국시장을 위한 친환경차 개발도 진행 중이다. 내년에 등장할 르노삼성의 첫 번째 하이브리드 모델인 ‘XM3 하이브리드’다.

언뜻 “수출만 하지 말고 그 차를 한국에도 팔면 좋을 텐데”라는 예비 고객도 존재한다. 그러나 실상은 쉽지 않은 일이다.

유럽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하이브리드지만 한국에서 판매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하이브리드 배출가스 기준이 유럽보다 까다롭기 때문이다. 권 부사장과 RTK 연구원들이 오늘도 밤잠을 줄여가며 XM3 하이브리드 출시를 준비 중인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권상순 르노삼성자동차 중앙연구소장(부사장)이 3일 경기 용인시 르노삼성자동차 중앙연구소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권상순 르노삼성자동차 중앙연구소장(부사장)이 3일 경기 용인시 르노삼성자동차 중앙연구소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공학계 "탄소 정책 취지에 공감, 과정에서 효율성 확보해야"

최근 권 부사장은 책임이 막중한 자리를 맡았다. 바로 ‘한국자동차공학회장’에 선출된 것이다.

한국자동차공학회는 사회 일반의 이익에 공여하기 위해 1978년 출범한 공익법인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공학을 대표하는 학술기관으로 올해 기준 3만8000명에 달하는 자동차 석학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자동차공학회장으로서의 그의 의지는 뚜렷했다. 우리 사회가 추진 중인 ‘탄소 중립’의 방향성을 공감하고 추진하되, 맹목적으로 추진 중인 세부사항은 공학계의 의견을 반영해 보완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부 정책도입 취지에는 근본적으로 공감하되 이 과정에서 ‘한국화’가 필요하다는 게 그와 한국자동차공학회 주요 석학들의 견해다.

“우리나라 이산화탄소 배출규제가 2023년에는 95g(승용차 기준)이에요. 차 회사는 여기에서 1g을 줄이는데 엄청난 비용 투자합니다. 탄소 배출 저감에는 백번이고 공감하지만, 우리 자동차 산업과 주행 환경 등을 고려한 정책을 도입하는데 심도있는 검토가 필요합니다."

▲한국자동차공학회장에 선출된 권 부사장은 앞으로 "다양한 토론의 장을 만들 것"이라고 공언했다. "올바른 자동차 정책 수립과 공공성 강화를 위해 공학자로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라는 게 그의 뜻이다.  (신태현 기자 holjjak@)
▲한국자동차공학회장에 선출된 권 부사장은 앞으로 "다양한 토론의 장을 만들 것"이라고 공언했다. "올바른 자동차 정책 수립과 공공성 강화를 위해 공학자로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라는 게 그의 뜻이다. (신태현 기자 holjjak@)

◇"공학회장으로서 다양한 정책 토론의 장 마련할 것"

맞는 말이다. 유럽은 작은 차 그리고 수동변속기가 대세다. 여기에 잘 뻗은 고속도로망과 교통 환경이 존재한다.

반면 한국은 대형 세단과 덩치 큰 SUV가 인기다. 심지어 승용차의 99%는 탄소배출에 불리한 자동변속기를 쓴다. 복잡한 도로환경과 차량 정체, 산악지형도 탄소 배출량 규제에 불리하다. 그런데도 당장 맞춰야 할 배출 규제는 유럽과 유사하다.

대부분 공학자가 탄소 중립이라는 대의적 명분에 동의하면서도 추진 과정에서 효율성을 강조하는 게 이런 이유다. 선진국의 규제치를 무조건 도입한다고 선진화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진정한 의미의 탄소 중립도 가능하다.

여러 공학자가 이와 관련한 논문을 쏟아내기도 한다.

자동차 생애 전주기를 따졌을 때 탄소 배출량만 따져보면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가 한결 유리하다는 주장들이다. 맹목적인 ‘전기차 추종’ 분위기를 냉철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의도도 숨어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동차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비중은 전체의 17% 수준, 절반 이상인 약 55%가 전기를 만드는 발전 과정에서 나온다.

반면 영국은 교통 분야 탄소배출 비중이 34%, 프랑스는 42%에 달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자동차(17%)만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몰린 상황이다.

권 부사장은 자동차공학회장으로서 다양한 ‘토론의 장’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올바른 자동차 정책 수립과 공공성 강화를 위해 공학자로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라는 게 공학자로서 그리고 공학회장으로서 그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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