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준섭의 중국 경제인 열전] 천고일제(千古一帝), 당 태종

입력 2021-12-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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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대 국제도시 ‘장안’, 실크로드의 문을 열다

천고일제(千古一帝), 중국의 수많은 황제 중에서도 가장 명군이라고 일컬어지는 황제는 바로 당나라의 태종 이세민(李世民)이다. 당 태종의 치세 기간에 중국 역사상 최전성기를 구가하였고, ‘정관(貞觀)의 치(治)’라 하여 치세에 있어 가장 모범을 보여준 황제로 손꼽힌다. 당시 오긍(吳兢)이라는 사관이 당 태종의 행적을 기록한 ‘정관정요(貞觀政要)’는 오늘날까지 제왕학(帝王學)의 기본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관(貞觀)의 치(治), 제왕학의 기본

당 태종 이세민은 598년 간쑤성(甘肅省)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어떤 선비가 그의 관상을 보고 “이 아이는 어른이 되면 반드시 세상을 구원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제세안민, 濟世安民)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아버지 이연(李淵)이 이 말을 듣고 ‘제세안민(濟世安民)’으로부터 ‘세민(世民)’을 따서 그의 이름으로 하였다.

어려서부터 매우 명민했던 그는 아버지를 도와 군사를 일으켜 무용을 크게 떨침으로써 당나라가 천하를 차지하는 데 으뜸인 공을 세웠다. 그러면서도 그는 학문을 가까이하여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는 학관(學館)에 가서 학문을 익히고 밤늦도록 토론하곤 하였다.

그가 즉위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궁녀 3000여 명을 대궐에서 내보낸 것이었다. 대신 그는 곧바로 홍문관을 설치하여 20만여 권의 서적을 모으고 학문에 뛰어난 인물을 선발하여 직책을 주었다. 그는 정사를 들을 때가 되면 학사들을 내전으로 불러 옛날 성인들의 언행을 논의하거나 고금의 정치에 대한 장단점을 비교 검토하여, 때로는 밤중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만두곤 하였다.

치국의 근본은 오직 인재를 얻는 데 있다

당 태종은 즉위 후 “치국의 근본은 오직 인재를 얻는 데 있다”라고 말하면서 “국가의 요체는 현자를 임용하고 불초한 자를 물리치는 것이다”라고 천명하였다. 그는 ‘임용은 반드시 덕행과 학식을 근본으로 한다’는 용인(用人)의 기준과 ‘사람은 모두 각자의 장점이 있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는 인재를 대단히 중시했으며, 다섯 차례에 걸쳐 ‘구현령(求賢令)’을 반포하여 각 분야의 뛰어난 인재를 자기 주위에 배치하였다.

당 태종의 용인은 가문족벌과 지역 그리고 친소관계의 제한이 없었다. 그의 대신 중에는 이세민이 당 왕조 건국 후 진왕(秦王)으로 봉해졌던 시기부터 수행하던 방현령(房玄齡), 장손무기(長孫無忌), 두여회(杜如晦) 등을 비롯하여 농민봉기를 일으킨 서무공(徐懋功), 진숙보(秦叔寶) 등이 있었고, 원래 정적의 부하였던 위징(魏徵)과 왕규(王珪) 등도 있었다. 또 수나라 말기의 유신(遺臣)이던 이정(李靖), 봉덕이(封德彛) 등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아버지 이연(李淵·당 고조)을 도와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당나라를 건국한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 ‘정관(貞觀)의 치(治)’라고 불리는 그의 치세는 중국 역사상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이상적인 국가로 손꼽힌다.
▲아버지 이연(李淵·당 고조)을 도와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당나라를 건국한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 ‘정관(貞觀)의 치(治)’라고 불리는 그의 치세는 중국 역사상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이상적인 국가로 손꼽힌다.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짓고, 차별받지 않고 상업을할 수 있던 시대

수나라 말엽 수 양제의 무리한 고구려 원정 이후 전국적으로 반란이 끊이지 않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인구도 격감한 상황이었다. 당 태종 초기 총인구는 200만 호에 지나지 않았다. 당 태종은 백성들의 조세를 경감하고 절약을 숭상하는 기풍을 조성하였으며 관리들의 부패를 일소하였다. 그는 균전제(均田制)의 토지제도를 실시하면서 동시에 조용조 제도를 시행했다. 조용조란 토지에 대하여 조(租), 사람에 대하여 용(庸), 호(戶)에 대하여 조(調)를 시행하는 세금 부과제도로서 조(租)는 장정에게 한 해에 곡식 두 섬, 조(調)는 비단 두 장(丈)을 각각 부과하였고, 용(庸)은 한 해에 20일간 부역(賦役)을 부과하였다. 농민들의 안정된 생산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 이렇게 하여 당 태종 말기 총인구는 380여만 호에 이르게 되었다.

한편 당 태종 시기는 중국 역사상 보기 드물게 상업에 대한 일체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아니 오히려 백성들에게 상업활동을 장려하고 우대하는 정책을 펼쳐 전국 곳곳에서 많은 상업 도시가 융성했다. 그리하여 당시 세계의 유명한 도시 중 중국의 도시들이 절반을 점할 정도였다.

당나라는 당시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26%를 점하고 있었다. 서양의 대국 동로마 제국이 쇠락하면서 동방의 당나라는 이미 세계 최강의 국가였다. 특히 당 태종 시기 당나라는 세계에서 문명이 가장 흥성한 제국이었다. 북쪽으로는 만리장성까지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 내륙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비단길은 이 시대 번영과 교류의 상징이었으며, 장안(長安)은 외국에서 오는 사신과 무역상으로 언제나 붐볐다. 이 시기에 당 왕조는 국경과 세관을 개방하여 완전한 대외개방의 시대를 열었다.

각국 사신·상인 왕래 끊이지 않아

장안은 주나라의 도읍이 된 이래 진나라를 거쳐 한나라, 수나라 그리고 당나라의 도읍이었고, 특히 장안을 중심으로 번성을 구가한 한나라와 당나라 시대에 중국은 역사상 가장 강성한 시기로 평가된다. 회홀(回鶻)족을 비롯하여 토번(吐蕃)인, 쿠차국(龜玆國), 남조인(南詔人), 신라, 일본 등 각국에서 온 사신과 상인 그리고 유학생 등 장안을 왕래하고 거주하던 외국인들이 대단히 많았다.

수나라 때 건설된 대운하도 장안의 번성에 기여하였다. 운하 개통으로 남북의 물자가 끊이지 않고 집결되었고, 이렇게 하여 천하의 양식과 각종 물자가 낙양(洛陽)을 거쳐 모두 장안에 모여들었다. 장안은 실크로드의 기점이기도 하여 많은 서역의 물자도 흘러들어왔다. 황, 록, 청의 화려한 당삼채(唐三彩) 도자기가 발달하였고, 상업지역 주변에는 ‘저(邸)’를 설치하여 상인들이 모여들고 물자를 진열, 보관하였으며 이곳에서 교역과 도소매업을 경영하였다.

장안은 당시 세계적인 도회지로서 세계 각국으로부터 온 사신과 상인의 왕래가 끊이지 아니하였다. 동서로 6마일, 남북으로 5마일에 이르렀던 장안의 규모는 오늘날 시안의 면적보다 8배가 더 크다. 당나라 시대에 장안만이 아니라 낙양, 광주(廣州), 복주(福州), 양주(揚州) 등의 도시들도 융성을 자랑하였다. 실크로드를 통한 대외 무역 역시 사상 최고의 번성기를 구가하였다.

백성은 나라를 띄울 수도 있지만 또 그것을 뒤집을 수도 있다

당 태종은 “물은 배를 띄울 수 있지만 동시에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水能載舟, 亦能覆舟)”고 말했다. 백성들이 존재함으로써 왕조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며, 때에 따라서는 백성들이 왕조를 갈아엎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당 태종 당시 정부 조세 수입은 백성들의 총수익의 40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당시 세금을 면제받는 사람 또한 매우 많았다. 9품 이상의 관리를 비롯하여 귀족, 관학생(官學生), 홀아비, 과부, 고아, 노비들은 세금을 내지 않도록 하였다. 중국 역사상 성세로 기록되는 ‘정관지치(貞觀之治)’는 이러한 토대 위에서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당 태종은 불과 52세에 세상을 떠나 재위 기간도 23년으로 그 명성에 비해 비교적 짧았다. 하지만 길지 않았던 그 기간에 많은 성취를 이뤘던 황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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