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대기업이 중고차 팔면 다르다고?

입력 2021-12-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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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차장

40대 직장인 A씨는 출퇴근용 중고차를 구매했다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직영 중고차 기업 케이카(K car) 청주직영점에서 ‘무사고’ 매물을 구매했는데 알고 보니 ‘사고 차’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사고’ 여부를 밝혀낸 곳은 이 차를 팔려고 찾아간 케이카의 서울 영등포 직영점이었습니다.

A씨는 억울한 마음에 구매 당시 케이카가 발급했던 '무사고 보증서'를 내보였습니다. 여기에 운행 기간 '보험처리 0건'을 증명할 서류까지 제출했으나 결과는 '사고 차'로 같았습니다.

그들 스스로 “무사고”라며 시세보다 비싸게 팔았던 중고차가, 몇 년 뒤 “사고 차”로 인정된 셈이지요. 이 회사는 공식입장을 통해 “해당 매물을 직접 확인할 수 없어 답변이 어려운 점을 이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케이카의 이런 행태는 최근 논란이 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과도 얽혀 있습니다.

한때 정권에 이리저리 휘둘리던 SK그룹은 온라인 중고차 거래 플랫폼을 외국계 기업에, 직영 중고차는 사모펀드(한앤컴퍼니)에 분리 매각했습니다. 케이카가 바로 후자입니다.

올해는 IPO를 거쳐 상장사로 거듭났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관리 수준과 운영 시스템은 여느 중고차 업계와 다를 게 없습니다. '무사고' 허위 매물은 물론, 부끄러운 내부 사정도 제보로 전해지고 있으니까요.

수입차의 인증 중고차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포장은 잘 돼 있는데 이곳도 믿지 못할 구석이 여럿 존재합니다.

연식과 주행거리를 한정해 매물을 모으고 수백 가지에 달하는 자체 기준을 통과한, 엄선된 매물만 인증 중고차로 판매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과 다른 매물이 숱하게 쏟아집니다.

한 BMW 3시리즈 컨버터블 오너는 반복된 시동 꺼짐을 시작으로 잇따르는 중대 결함이 터져 나오자 회사 측에 신차 교환을 요청했습니다.

피 말리는 법정 싸움이 본격화될 무렵, 회사 측은 문제의 차를 못 이기듯 교환해 줍니다. 그리고 윗급 5시리즈를 값싸게 판매하는 것으로 합의점을 찾은 것이지요.

그럼 문제가 됐던, 오너가 “무서워서 하루도 탈 수가 없다”라며 항변했던 그 문제 차는 어디로 갔을까요. 네 맞습니다. BMW 인증 중고차 전시장에 매물로 나왔습니다.

그뿐인가요. 수입차 인증 중고차 매장에서 팔리는 차 가운데 상당수는 '본사 업무용 차'로 포장된, BMW의 시승 차들입니다. 극한 상황에 몰리고,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쳤다는 의미지요.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이 부분에 방점을 찍고 정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BMW 한국법인 자체가 이런 허점을 간과한다는 게 더 문제입니다.

우리 중고차 시장이 지금 이렇습니다. 시장에 진출한 상장사와 수입차 법인조차 혼탁해진 여느 중고차 딜러와 다를 게 없습니다. 대기업이 시장에 진출해도 사정이 크게 나아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는 우려도 이 때문에 나옵니다.

결국,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결정은 '나쁜 것과 좋은 것'이 아닌, '더 나쁜 것과 덜 나쁜 것' 중 하나를 고르는 일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 차원의 보완책 마련이 절대적입니다. 신차의 교환 및 환불이 가능하도록 만든 이른바 '레몬법'처럼, 중고차 시장에서도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그리고 제도적 장치의 강화가 절실합니다.

어차피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결정권을 다음 정권으로 넘길 모양이니, 시간적 여유도 있겠네요.

junior@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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