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왜 지하철을 막아야만 했나...그들이 ‘나쁜 장애인’ 자처한 이유

입력 2021-12-2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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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20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열차에 탑승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20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열차에 탑승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애인 단체의 기습 시위로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열차 운행이 또 다시 지연됐다. 바쁜 출근 시간대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자 시민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번 시위를 주도한 장애인 단체는 “시민들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 방법을 찾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항변한다.

왜 이들은 ‘나쁜 장애인’을 자처하며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었을까.

▲‘세계장애인의 날’인 3일 오전 서울 시내 지하철역에서 장애인단체가 지하철을 직접 타고 이동하며 ‘이동권 보장’ 시위를 벌였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역 개찰구에 게시된 열차지연 안내문. (연합뉴스)
▲‘세계장애인의 날’인 3일 오전 서울 시내 지하철역에서 장애인단체가 지하철을 직접 타고 이동하며 ‘이동권 보장’ 시위를 벌였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역 개찰구에 게시된 열차지연 안내문. (연합뉴스)

교통 방해하는 시위 방식, 특별한 방식은 아니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20일 오전 서울 지하철 일부 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를 열어 출근 시간대 열차 운행이 지연됐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전장연은 이날 오전 7시 12분경부터 5호선 왕십리역에서 휠체어 바퀴를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 틈에 끼워 문이 닫히지 못하게 막는 방식으로 시위를 시작했다. 잠시 뒤 7시 30분경부터는 5호선 여의도역과 행당역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시위를 진행했다.

시위대는 지하철 역무원들과 경찰이 제지하면 열차에 탔다가 다음 역에서 다시 10~20분간 출입문을 막아서는 방식으로 시위를 이어갔다. 시위는 오전 9시 45분 즈음 종료됐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대중교통 운행을 방해하는 방식의 시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장연은 UN이 지정한 세계장애인의 날이었던 지난 3일 출근길에도 5호선 여의도역과 공덕역에서 전동차에 올라 문을 못 닫도록 막는 방식으로 시위를 벌였다. 당시에도 5호선 여의도에서 하남 방면 열차 운행이 40여 분간 지연되는 등 교통 불편이 이어졌다.

지난 10월 22일에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 이동권 증진 계획을 약속대로 이행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당시 장애인 30여 명을 포함한 장애인 활동가 100명이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과 서울역에서 열차를 타고 내리는 시위를 진행해 열차가 지연됐다. 이 과정에서 휠체어를 탄 일부 활동가들은 쇠사슬로 열차 출입구 손잡이에 몸을 묶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도 비슷하다. 미국의 ‘휠체어 워리어(휠체어 전사)’들도 ‘위 윌 라이드(We will ride, 우린 탈 것이다)’를 외치며 버스를 막아섰다. 그 결과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한 1990년 미국장애인법 제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장애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대중교통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2014년 김태호 당시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이 휠체어리프트 이동체험을 하는 모습. (뉴시스)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2014년 김태호 당시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이 휠체어리프트 이동체험을 하는 모습. (뉴시스)

이들이 이토록 절실하게 시위에 나서는 것은 대중교통 환경이 단순히 ‘이동이 불편한’ 것을 넘어 ‘목숨을 위협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엘리베이터를 대신해 지하철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는 2001년 오이도역에서 첫 사망사고가 발생한 이후로 지속적으로 사망·부상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전장연에 따르면 수도권에서만 한해 5건 이상의 사망·부상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부 역사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상황이다. 올해 4월 기준, 서울지하철 역사 22곳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철과 더불어 주요 대중교통인 버스 역시 장애인들이 타기 어렵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28.8%였다. 장애인들은 버스 10대 중 7대를 탑승할 수 없는 것이다. 장애인들에게 대중교통은 위험과 불편을 감수하고 타거나 아예 탈 수 없는 대상이다.

‘나쁜 장애인’이 되는 이유...“시민 대 시민 갈등은 그만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일각에서는 이들의 시위 방식이 지나치게 과격하고 타인에게 불편을 유발한다고 지적한다.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비장애인들의 권리를 해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반대로 ‘나쁜 장애인’이 될 수밖에 없는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시민들의 불편함을 일으키는 방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방해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함께 이용하자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변재원 전장연 정책국장은 “사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출퇴근 시간에 함께 대중교통에 탄다는 것 자체를 상상해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방해가 목적이 아닌, 출퇴근 시간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해보자는 취지였다. 교통수단을 장애인·비장애인 모두 포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디자인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변 국장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으셨을 것을 잘 알고 있다. 비판하시는 시민들의 마음도 이해하고 있다. 너무나 죄송한 부분이다”라며 “그러나 시민 대 시민이 이러한 갈등을 벌이는 것보단 정부와 국가가 갈등 조정이라는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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