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말-유럽 가스관' 독일 공급 나흘째 중단
우크라이나 관련 군사적 충돌 가능성 배제 안 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유럽 가스값 폭등에 대해 유럽이 자초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가 제기하고 있는 내년 초 우크라이나 침공설을 부인하지 않음으로써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열어뒀다.
23일(현지시간) CNN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연례 연말 기자회견에서 최근 유럽 내 가스 가격 폭등 사태 원인이 러시아가 아닌 유럽에 있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그는 "러시아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유럽 가스 위기는 EU가 장기 계약이 아닌 시장 시스템으로 이전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EU 국가들이 러시아와 장기 계약을 맺고 가스를 공급받던 관례에서 스폿(현물) 시장에서 가스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한 것이 가스 가격 폭등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 러시아 측의 입장이다.
푸틴 대통령은 "가즈프롬(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은 기존 계약에 따라 요청된 모든 물량을 공급하고 있다"면서 "가즈프롬이 사흘 연속 '야말-유럽 가스관'을 이용한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 물량을 예매하지 않았다고 비난하지만, 이는 이 가스관으로 운송되는 가스를 구매하는 독일과 프랑스 등이 구매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독일로 가는 일부 러시아산 가스가 최종적으로 우크라이나로 재판매되는 것으로 의심된다면서, 유럽은 자체적으로 가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이날 저녁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이 다음날(24일) 자 야말-유럽 가스관 수송물량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로써 벨라루스·폴란드를 거쳐 독일로 연결되는 '야말-유럽 가스관'을 통한 가스 공급 중단이 나흘째 이어지게 됐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미국이 내년 초 동유럽 안보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히면서도 러시아가 "군사적 기술 조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4시간가량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현재로써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면서 "미국이 내년 초 제네바에서 회담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가 서방이 안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오래 기다리진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나 다른 주권국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어떤 보장을 해줄 수 있는가'라는 영국 '스카이 뉴스' 방송 기자의 질문에 "미사일을 가지고 우리 집 문 앞까지 온 것은 미국이었다"면서 "당신들은 내게 어떤 보장을 요구하지만, 당신들이 우리에게 (안보를) 보장해야 한다. 늦지 않게 바로 지금 (그렇게 해야 한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1990년대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동진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지만 그들은 속였다. 나토는 5차례나 확장을 거듭했다”며 서방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나토의 추가적인 확대를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자국의 안보가 크게 위협받는다며 반발해왔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러시아계 주민을 압박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어 사용을 제한하는 법률을 채택했다고 언급했다. 또 러시아계가 다수인 동부 돈바스 지역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이미 2차례 무력 사용을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돈바스 지역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군사적 개입을 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10월 말 이후부터 러시아가 2014년에 이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침공을 계획하고 있다며 경계를 강화해왔다. 이에 러시아는 이달 중순 우크라이나의 나토 비가입과 나토의 사실상 동유럽 철수 등의 요구가 담긴 러·미 간 안보 보장 조약 초안과 러·나토 회원국 간 안보 보장 조치 협정 초안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이날 미국과 미국 동맹국들이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베이징 올림픽에 대해 '외교적 보이콧'을 결정한 미국의 조치는 실수이며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은 중국의 발전을 제한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지난 15일 푸틴 대통령이 베이징올림픽 개회식에 참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