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의 '팍스로비드'에 이어 머크의 '몰누피라비르'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획득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를 위한 먹는 약(경구용 치료제)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우리나라는 팍스로비드 30만 명분 이상을 구매하고, 긴급사용승인을 거쳐 도입할 예정이다.
방역당국은 화이자의 경구용 치료제 팍스로비드에 대해 앞서 구매약관을 체결한 7만 명분을 포함한 30만 명분 이상의 구매를 준비하고 있다고 24일 밝혔다. 구체적인 규모는 식약처의 긴급사용승인 일정에 맞춰 발표할 예정이다.
식약처는 22일부터 팍스로비드의 긴급사용승인 검토에 착수했다. 이와 관련, 김옥수 중앙방역대책본부 자원지원팀장은 23일 브리핑에서 "식약처의 긴급사용승인이 올해 말까지 검토될 것"이라고 언급해 연내 승인이 가능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화이자의 팍스로비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증식하는 데 필요한 효소인 프로테아제의 활성을 억제하는 치료제다. 인간면역결핍(HIV) 치료제로 쓰이는 항바이러스제 '리토나비르'와 함께 투여한다. 5일간 하루 2회 3알씩 총 30알을 복용하면 된다.
화이자는 머크보다 늦게 FDA 긴급사용승인을 신청했지만, 첫 번째 경구용 치료제 타이틀을 따냈다. 효과 면에서 월등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화이자에 따르면 임상 3상 시험 최종 분석 결과 고위험군이 코로나19 증상 발현 후 사흘 이내에 팍스로비드를 복용하면 입원·사망 확률을 89%까지 낮췄다. 닷새 이내에 복용하면 88%의 효능을 보였다.
건강한 청년이나 위험인자가 있지만 백신을 접종한 사람 등 표준위험군 대상 임상시험에서는 입원·사망 확률을 70% 낮추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국내외에서 급속히 퍼지는 오미크론 변이에 대해서도 효능이 나타났다.
팍스로비드가 90%에 육박하는 효능을 보인 반면, 몰누피라비르는 50%로 기대되던 효능이 최종 분석에서 30%로 하향 조정됐다. 이 약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암호 오류를 유도해 유전체 복제과정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닷새간 하루 2회 복용하는 점은 팍스로비드와 같지만 1회에 4알씩 총 40알을 먹어야 한다.
몰누피라비르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FDA는 18세 이하 환자에 대해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사용을 금지했으며, 선천증 결손증을 포함한 심각한 안전 문제에 대한 경고문을 부착하고 판매하게 했다. 노령층과 비만 및 심장 질환자 등 고위험군을 포함해 입원 가능성이 높은 경증 코로나19 환자 가운데 다른 치료제 대안이 없거나 의학적으로 적합한 경우 몰누피라비르를 사용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화이자 및 머크와 경구용 치료제 40만 4000명 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이자의 팍스로비드가 머크의 몰누피나비르보다 약 3배 높은 효능을 보이면서 화이자의 구매 물량을 30만 명분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 협의 중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도입 초기 전 세계적인 공급 대란이 벌어졌듯이, 팍스로비드도 초반에는 각국의 도입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팍스로비드의 양은 18만 명분으로, 이 가운데 6만~7만 명분은 이미 미국에 배정된 상태다.
주요국이 선점한 팍스로비드 규모도 우리와 크게 차이난다. 미국 정부는 52억9000만 달러(약 6조3000억 원)을 투입해 1000만 명분을 선구매했다. 일본은 200만 명분을 공급받기로 했으며, 영국은 275만 명분, 호주는 50만 명분을 각각 확보했다.
화이자는 내년도 생산 계획을 기존 8000만 명분에서 1억2000만 명분으로 늘렸다. 현재 9개월에 달하는 생산 기간은 절반으로 단축할 방침이지만, 기간이 줄어들어도 4개월 이상이 걸린다. 따라서 각국 승인 여부보다 도입 시기가 치료제 확보전의 승패를 가를 전망이다.
프랑스는 22일(현지시간) 몰누피라비르의 효능이 좋지 않다는 점을 들어 지난 10월 결정했던 몰누피라비르 구매를 위약금 없이 철회했다. 현재 우리나라가 확보한 몰누피라비르 물량은 24만 2000명 분이다.
이와 관련해 방역당국은 "(몰누피라비르의 구매 계약은) 미국 FDA와 한국 식약처의 긴급사용승인을 조건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FDA의 승인을 받았더라도 식약처에서 승인하지 않으면 국내에서 몰누피라비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계약 철회 가능성에도 여지를 남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