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준섭의 중국 경제인 열전] 연재를 마치며

입력 2021-12-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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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지어진 게 아니라, 발품 팔아 생긴 것”

필자가 중국 상하이의 푸단대학교에서 유학하던 시절 저장(浙江)성에 있는 이우(義烏)라는 도시에서 그곳이 고향인 푸단대학교 중국인 대학생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조그만 소도시였던 그 도시 사람들은 집집마다 한 가지씩의 ‘가업’을 일구고 그 완제품을 시 중심에 위치한 시장의 자기 판매대에서 팔고 있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당시 필자의 눈에 비친 이들 중국인들은 욕심이 크지는 않지만, 무엇인가를 생산해내고 그것을 판매하려는 본능으로 충만된 사람들이었다.

이우시 ‘중국소상품성’의 상인들

이우시에는 ‘중국소상품성(中國小商品城)’이 자리 잡고 있다. 총면적 260만㎡이고 10여 개의 전문 시장과 30여 개의 전문 골목 상가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리를 잡으면서 무려 5만여 개의 가게들이 영업 중이다. 종업원 수는 20여만 명이고, 1일 고객은 20여만 명에 이른다. 매일 같이 전 세계에서 몰려든 5000여 명의 외상(外商)이 이우 시장에 나온 상품을 구매하고 200여 외국회사의 상주 직원들이 상품을 자국에 도매로 넘긴다. 또 세계 각지로부터 10만여 개 기업의 6000여 유명상표 170만 개의 상품이 이곳에 상시적으로 전시된다.

그러나 이우시가 보여준 시장의 성공은 비단 이렇듯 드러난 시장의 겉모습에만 있지 않다. 이우시의 상인들은 말한다. “시장은 지어진 것이 아니라, 발품 팔아 생긴 것이다.” 오늘날 이우에서 소상품 시장이 이토록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저 시장 건물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이뤄낸 것이 아니라 고생과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유능한 상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상인들이 전국 각지의 물건을 이우에 실어 날랐고, 또 이들이 그 물건들을 전국 각지와 세계 각지에 팔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우 시장의 성공 뒤에는 대중들의 창조적이고 자발적인 의지를 존중하면서 최대한 그 활동을 장려하고 고취한 이우시 정부의 정책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올해 2월 중국 동부 저장성 이우시의 이우국제무역시장에서 한 외국 상인이 QR코드를 보여주고 있다. 전 세계에서 하루 5000여 명의 외상이 찾는 이우 시장의 성공에는 상업을 중시하는 중국의 전통이 자리하고 있다. 이우(중국 저장성)/신화뉴시스
▲올해 2월 중국 동부 저장성 이우시의 이우국제무역시장에서 한 외국 상인이 QR코드를 보여주고 있다. 전 세계에서 하루 5000여 명의 외상이 찾는 이우 시장의 성공에는 상업을 중시하는 중국의 전통이 자리하고 있다. 이우(중국 저장성)/신화뉴시스

‘화식열전’서 찾은 상업 전통의 단초

이우시에 다녀온 뒤부터 필자는 중국인들의 그러한 상업적 기질과 전통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 상업사에 대한 서적을 틈틈이 사서 읽고 또 관련 논문들을 수집하여 정리하였다. 특히 사마천 ‘사기(史記)’의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중국 상업 전통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상업’이라 하면 ‘장사’라는 좁은 의미로 간주하면서 그것을 폄하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이 ‘상업’이라는 용어는 실은 보다 광의의 의미로서 사업 혹은 경제경영과 동일한 함의를 지니는 용어로 사용된다.

“마치 물이 아래로 흘러가듯이 밤낮으로 정지하지 않으며, 물건은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고 가서 찾지 않아도 백성들이 스스로 가지고 와서 무역을 한다.”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무려 2000여 년 전에 이미 사마천은 생산과 함께 반드시 유통이 결합되어야 하며, 그럴 때만이 완정(完整)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설파하였다. “재부를 추구할 때, 농사가 공업보다 못하고, 공업은 상업에 미치지 못한다”라며 돈을 벌기 위한 가장 쉬운 방도가 상업에 존재함을 분명하게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사마천은 가장 좋은 정책은 자연적인 추세에 순응하는 것이고, 가장 나쁜 정책은 백성과 다투는 것이다”라고 주창하였다.

‘응유진유’와 ‘지대물박’의 나라

“있어야 할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춰져 있다”는 ‘응유진유(應有盡有)’와 ‘지대물박(地大物博)’의 나라, 중국은 역사상 20~30년 동안만이라도 전쟁이 없이 평온한 상태가 유지되면 반드시 성세(盛世)를 이루었다.

일찍이 사마천이 주목한 것은 자신들의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산과 유통을 실천하는 대중들의 자발성이었다. 그리고 덩샤오핑이 문화대혁명과 인민공사 그리고 대약진운동이라는 극단적인 인위적 장벽을 걷어내고 붙잡은 것도 바로 불굴의 의지로 생산과 교역에 매진한 대중들의 자발성이었다. 상공업을 극도로 억압함으로써 중국의 정체를 초래한 원인(遠因)을 제공했던 명나라 시기, 그 억압 체제에서 끈질기게 경제의 불씨를 살려 번영시켜 냈던 것도 민간 대중들이었다.

알리바바·샤오미를 준비한 힘

오늘날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선 알리바바를 비롯하여 후발주자이면서도 일약 세계적 강자의 반열에 뛰어오른 샤오미 스마트폰 그리고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부상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준비된 힘, 예측된 부(富)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이 연재는 중국 역사상 의로운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여 이웃과 나눌 줄 알았던 의로운 부자들을 기록하였고, 또 그 부가 국가와 견줄 만큼 많았지만 그 끝은 항상 좋지 못했던 탐관들의 악행도 기술하였다. 역사적 배경이란 알아둘 충분한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무협지란 바로 진상(晋商: 산시성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상업을 전개한 상인들)과 휘상(徽商: 안후이성을 근거지로 상업 활동을 전개한 상인들)으로 대표되는 상인들의 상행위 과정에서 그 모티브를 구한 것이었다.

초절정의 사업전략, 성공 이끈 비결

그리하여 중국 고금(古今)의 경제인들의 삶에 대한 서사를 통하여 손자병법에서 36계까지 갖가지 병법이 구사되는 초절정의 신출귀몰한 사업전략으로써 전쟁과도 같은 치열한 경쟁을 끝내 성공으로 이끌었던 그 비결과 단서를 잡아내고자 했다.

3년이 넘게 이어졌던 ‘중국 경제인 열전’ 연재를 이제 마친다. 이 연재를 하던 중, 아내가 이미 췌장암 4기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내 목숨보다도 귀하고 나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아내를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했지만, 아내는 서럽고 아프게 투병하다가 너무도 안타깝고 슬프게 이 세상을 떠나갔다. 그 절망감에 나는 철저히 갇혀 있다. 돌이켜보면 통절한 그 고통의 늪에서도 이 ‘중국 경제인 열전’을 눈물을 삼키며 써나갔던 일은 이 세상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나에게 적잖은 위안이 되어 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 부족한 내 글을 편집해 주시느라 애쓰신 이투데이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서도 이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셔서 모쪼록 건강하고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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