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 “장사, 앞으로가 더 걱정…그래도 희망 본다”

입력 2021-12-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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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재인 한국코인노래연습장협회 이사, 강남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명진·조민지 부부, 고장수 전국카페사장연합회장.
▲(왼쪽부터) 이재인 한국코인노래연습장협회 이사, 강남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명진·조민지 부부, 고장수 전국카페사장연합회장.

“솔직히 크게 기대하는 건 없고요. 그냥 코로나가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함박눈을 머금은 구름이 밤하늘에 드리웠던 성탄 전야, 강남역 거리를 찾았다. 예년이라면 발 디딜 틈이 없어야 했지만, 거리는 비교적 한산했다. 이곳에서 꼼장어를 팔고 있는 이명진, 조민지 사장 부부의 가게도 서너 테이블만 찼을 뿐 비교적 조용했다. 다시 찾은 28일 평일 저녁에도 가게 분위기는 비슷했다.

“업종이 불을 피우는 거 다 보니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다. 여름은 비수기고 지금이 대목이다. 원래 연말에는 예약도 많고 가게도 꽉 차야 하는데, 인원 제한에 사회 분위기도 회식을 안 하는 분위기다 보니 타격을 많이 입었다.”

▲28일 오후 서울 강남에서 이명진, 조민지 사장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유리 기자 inglass@)
▲28일 오후 서울 강남에서 이명진, 조민지 사장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유리 기자 inglass@)

부부가 운영하는 ‘꼼씨네’는 잊을만하면 가게가 바뀌는 강남에서 특유의 맛으로 2004년부터 자리를 지켜왔다. 원래 부모님이 길 건너 건물 2층에서 운영하다가, 점점 높아지는 임대료에 2019년 6월 지금의 자리로 왔다.

이들을 처음 만난 건 22일 정부 방역 정책에 반발하는 집회가 열렸던 광화문이었다. 그날은 민지 씨 혼자 거리로 나갔다. 답답한 마음에 생전 처음 나가보는 집회였다. 남편인 명진 씨는 가게를 지켰다.

명진 씨는 “날도 추운데 부인만 광화문에 보내서 마음이 안 좋았다”며 ”가게 문을 닫고 나가고 싶었지만, 임대료가 비싸 한 푼이라도 더 팔아 적자를 메꿔야 해 가게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2년 가까이 이어진 코로나19로 가게 매출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손실은 “대출을 받아서 돌려막기”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 받은 대출만 1억 원 정도다. 정부 방역 정책으로 가게 문을 닫았지만, 정부로부터 받은 건 손실보상금 1400만 원과 28일 지급된 방역지원금 100만 원이 전부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조치 시행을 예고한 15일 서울 중구 명동 식당가가 한산하다.  (조현호 기자 hyunho@)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조치 시행을 예고한 15일 서울 중구 명동 식당가가 한산하다. (조현호 기자 hyunho@)

연말마다 늘 북적거리던 명동도 한산하긴 마찬가지였다. 점심을 먹는 사람들로 붐벼야 할 29일 낮에도 명동 상권은 조용했다. 20년 넘게 명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한 A 씨는 “2년 넘게 코로나가 길어지며 매출이 절반 넘게 빠졌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직원과 같이했는데 이제는 남편하고 둘이서만 한다. 지금까지 방역지원금 받은 거랑 손실 보상 몇 푼 받은 건 당연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반찬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 인근 직장인들의 점심과 저녁을 책임지던 A 씨는 “이제 장사가 재미없다.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B 씨 역시 지친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인터뷰해도 바뀌는 것도 없고 하고 싶지 않다. 코로나로 힘든 건 뭐 다 힘들다”고 했다.

대출은 지원이 아니라 갚아야 하는 ‘빚’

▲2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고장수 전국카페사장연합회 회장을 만났다. 그는 카페 운영과 함께 방역 수칙 완화 촉구 등 연합회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안유리 기자 inglass@)
▲2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고장수 전국카페사장연합회 회장을 만났다. 그는 카페 운영과 함께 방역 수칙 완화 촉구 등 연합회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안유리 기자 inglass@)

전국 카페 사장 6000여 명이 모인 전국카페사장연합회는 올해 1월 영업 제한을 계기로 처음 조직됐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고장수 회장은 연합회의 대표로 올 한해 공무원은 물론, 국회의원ㆍ장관 등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길거리로 나가 시위도 했고, 언론에도 수차례 얼굴을 비쳤다. 평범한 카페 사장이었던 작년만 해도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고 회장은 “정부가 위중증 병상 확충, 의료 인력 충원 없이 너무 빨리 일상 회복을 선언했다”고 꼬집었다. 부족한 방역의 여파는 고스란히 자영업자가 떠안았다. 부족한 손실 보상과 정책 지원이 대출 중심인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대출은 지원이 아니라 갚아야 하는 빚이다. 그동안 많은 정치인이 PPP(Paycheck Protection Programㆍ급여보호프로그램)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말했지만, 말로만 그랬지 실제 도입할 의지나 실행은 없는 것 같다.”

PPP는 소상공인ㆍ중소기업에 저리 대출을 제공하고, 이를 고용과 임대료 등에 사용하면 대출금 상환을 감면하는 제도다. 아울러 그는 집합 금지 조치 기간에 따른 적극적인 임대료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대료는 국세청 자료에서 쉽게 선별할 수 있어서 산식도 쉽다. 손실보상 제도 자체가 2019년 매출이랑 비교하는 데, 말이 안 된다. 손실 보상은 영업 제한을 받으면서 앞으로 더 벌 수 있는 데 못 번 금액을 배상해야 한다.”

“손실보상액 현실화, 손실보상 사각지대 해소, 신속한 손실보상”

▲29일 이재인 한국코인노래연습장협회 이사가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자신의 영업장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재인 이사는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를 위해 “손실보상액 현실화와 손실보상 사각지대 해소, 신속한 손실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유리 기자 inglass@)
▲29일 이재인 한국코인노래연습장협회 이사가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자신의 영업장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재인 이사는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를 위해 “손실보상액 현실화와 손실보상 사각지대 해소, 신속한 손실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유리 기자 inglass@)

이재인 한국코인노래연습장협회 이사는 코로나 이후, 내 매장과 오늘의 매출에만 신경 쓰는 삶에서 업계와 자영업자 전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삶을 살게 됐다고 말했다. 창업 전 공기업에서 13년간 일했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억울한 일이 발생했을 때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며, 요구 사항을 문서로 표현하는 분들이 많지 않다 보니 본의 아니게 전면에 나서 활동하게 됐다. 처음에는 내 매장만 신경 썼다가 이제는 코인노래연습장 업계, 나아가 자영업 전체와 고민을 나누게 됐다.”

그는 “손실 보상액을 현실화하고, ‘선 지원ㆍ후 감면’ 형태의 신속한 손실 보상뿐 아니라, 여행업 등 손실 보상의 사각지대를 해소해달라”고 촉구했다. 방역 정책에서 업종별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코인노래연습장의 경우 일반 노래연습장과 이용 고객과 영업 형태가 다르니 다른 방역 수칙을 적용해달라고 촉구했다. 앞서 김포, 의정부 등 11개 지자체에서도 일반 노래연습장에는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지만, 코인노래연습장은 영업을 허용 한 바 있다.

“고공행진 하는 물가, 배달 수수료…버티고만 있다”

▲정부가 거리두기 강화 대책을 발표한 16일 서울 종로구 종각 인근에서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정부가 거리두기 강화 대책을 발표한 16일 서울 종로구 종각 인근에서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재룟값, 배달 수수료 모두 높아지는데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작정 가격을 올릴 수 없으니 버티고 있다.”

코로나19 외에도 높아지는 물가, 배달 수수료 등 자영업자를 위협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산적해 있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C 씨는 지난해 2월 말, 코로나와 함께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보다 채솟값은 8배, 달걀값은 3배 정도 올랐다.

현재 매출 대부분은 배달에서 나오는데, 최근 단건 배달이 대세로 자리 잡으며 수수료가 높아지고 있다. 다행히 C 씨 가게는 적자 없이 매출이 나오고 있지만, 그는 점점 치열해지는 경쟁과 위기를 겪고 있는 주변의 수많은 자영업자를 보며 불안함을 느낀다.

“최근 주변에 배달 전문 업체로 들어온 식당 3곳이 2~3달 만에 문을 닫고 나갔다. 얼마 전 신용보증재단에 상담받으러 갔을 때 매출이 아예 없었다는 자영업자도 봤다. 주변에 폐업하려고 대출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앞으로가 더 걱정…그래도 희망을 본다

▲28일 오후 서울 강남에서 이명진, 조민지 사장 부부가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 19가 사라져 "걱정없이 소소한 일상을 다시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안유리 기자 inglass@)
▲28일 오후 서울 강남에서 이명진, 조민지 사장 부부가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 19가 사라져 "걱정없이 소소한 일상을 다시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안유리 기자 inglass@)

고장수 회장은 지난 1년을 “참 좌절도 많이 하고 희망도 많이 본 해”라고 말했다.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그동안 한 데 모으기 어렵다는 카페 사장님들이 함께 모였고, 정부 부처 등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창구도 생겼다.

고 회장은 향후 원재료 가격 상승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내년 1월 협동조합 조직을 추진하고 있다. 그의 소원은 “자영업자가 정치인 안 만나고 밖에 나가서 시위 안 하는 세상”에서 마음 편하게 온전히 장사 하는 것이다.

이재인 이사 역시 “그동안 이 시기를 통해 각종 정책적 혜택과 사회 안전망에서 멀어져 있던 자영업자가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C 씨는 상황이 좋아지면 “전화가 아니라 손님과 얼굴 보고 부대끼는 장사가 하고 싶다“고 소원을 밝혔다.

이명진, 조민지 부부는 “걱정 없이 소소한 일상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작년 여름에 결혼했지만, 그동안 너무 바빠 아직 결혼식도 못 올리고 그냥 함께 살고 있다. 큰 걱정 없이 하루 장사 잘하고, 함께 저녁을 보내는 그런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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