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춤추는 경제정책] 설익은 대형마트 영업 규제에 일자리 수천개 사라져

입력 2022-01-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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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구조

전통시장 부활? 주변상권 악영향
법안통과 前 조사때도 “효과 적다”
대선 표 의식한 정치권 밀어붙여

“코로나에 ‘이거’까지 겹치니 죽을 맛이지, 뭐.”

서울시 구로구에서 3년째 한식당을 운영 중인 A 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A 씨의 식당은 지난해 11월 문을 닫은 롯데마트 구로점과 걸어서 10분 거리다. 폐점 소식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코로나19로 손님 수가 반 토막 난 상황에서 평일 저녁과 토요일, 쇼핑을 마치고 들르는 ‘장바구니 인파’마저 떠나고 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마트가 없어진 자리엔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A 씨는 “내년 말에나 완공된다던데, 그때까지 가게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허탈해 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영업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통과된 지 9년이 지났다. 규제에 가로막혀 매출 성장이 꺾인 대형마트들은 코로나19에 따른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폐점 중이다.

역설적인 건 대형마트 쇠락의 영향이 소상공인에게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의 ‘대형유통시설이 주변 상권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따르면, 2017년 이후 폐점한 대형마트 7개 주변 0~1㎞ 내 전체 업종 매출액은 폐점 이듬해 4.82% 감소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수천 명이다. 2년 새 10개 넘는 매장을 정리한 롯데마트의 직원 수는 2018년 말 1만3661명에서 2021년 3분기 분기보고서 기준으로 9916명까지 줄었다. 3년 사이 4000명 가까이 일자리를 잃었다. 특히 여성을 중심으로 한 단시간 근로자 감소폭이 컸다. 5개 이상의 매장을 정리한 이마트 역시 2만6018명에서 2만4925명까지 줄었다.

그나마도 직접 고용된 인원에만 한정된 결과이고, 납품업체 등 간접고용 인원까지 합하면 대형마트 규제로 인한 실직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평균 매출 500억 원의 대형마트 1개 점포가 문을 닫을 경우 945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렇다고 이 기간에 전통시장 매출액이 극적으로 는 것도 아니다. 통계청 소매판매액 수치를 살펴보면, 의무휴업 규제가 시작된 2012년 11.5%였던 전통시장 점유율은 5년 후인 2017년 10.5%까지 쪼그라들었다.

실익보다 훨씬 큰 기회비용을 정책 수립 당시엔 예측할 수 없었을까.

법안 통과 석 달 전인 2012년 9월, 당시 지식경제부는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전통시장과 협력 중소업체의 매출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용역 조사 결과를 실시했다. 내용은 예상 정책 효과와는 딴판이었다. 전통시장 매출은 이전에 비해 크게 늘어나지 않은 반면,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중소 협력업체와 농어민들의 매출과 수익성은 악화했다.

그럼에도 그해 연말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표 논리에 이런 우려를 애써 무시했다. 지역 소상공인 표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정치적 계산이 앞선 결과였다. 세 명의 대선 후보들은 대형마트 규제가 골목상권을 살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규제 완화와 자유 시장 원칙을 지켜야 할 보수 진영 후보마저도 다를 게 없었다.

대선이 법안 통과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다는 건 당시 국회 회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다. 2012년 11월 진행된 제16차 지식경제위원회 전체 회의록을 살펴보면,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정책이 졸속 처리되는 면이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초선의원이었던 B 씨는 “이 법(유통법)이 정말 중요한 법이기 때문에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대선하고 관련돼서 처리가 됐다. 다음부터는 그런 부분들이 충분히 논의되도록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중진의원은 “물론 골목상권을 지키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중략)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극단적이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유통산업발전법은 경제 논리보단 지역 표심 등 정치 논리로 도입된 규제”라며 “대형마트가 문을 닫으면 그 주변 상권이 더 많은 피해를 보고, 사람들이 대형마트 대신 전통시장에 가는 게 아니라 쇼핑을 포기하거나 온라인을 택한다는 사실이 수많은 통계를 통해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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