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왜 성공한 ‘워킹대디’는 없는가

입력 2022-01-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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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의 ‘유퀴즈’를 즐겨 본다. 보통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좋다. 순수한 입담에 웃고, 절절한 사연에 운다. TV를 끄고서도 자존감을 고민하게 만드는 여운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윤여순 전 LG아트센터 대표 편이다. 그녀는 국내 최초의 여성 임원이다.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오스카상을 거머쥔 윤여정의 동생이기도 하다. 마흔이 넘어 입사하게 된 계기와 유리천장 아래서 외계인 취급을 받았던 경험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에게 “육아의 책임은 엄마 혼자가 아닌 부모의 몫”이라고 위로했다.

방송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고된 육아로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때였다. 확진자가 늘어 몇 달 간 아이 둘을 혼자 돌봤다. 입맛 까다로운 첫째를 위해 매 끼니 밥을 지었고, 이가 나지 않은 둘째를 위해 재료를 매번 다져 이유식을 만들었다. 호기심 많은 아이에게 시선을 떼면 이내 사고가 터졌다. 한숨을 돌린 만큼 집안은 엉망이 됐다. 나를 위한 건 육퇴 후 마시는 맥주 한 캔이 전부였다.

그 시간 남편은 없었다. 당시 프로젝트를 맡았던 남편은 아이들이 잠든 후에야 집에 왔다. 그리고 또 일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속은 아니었다. 몇 달 전 내가 복직을 하면서 우리 부부의 골은 더 깊어졌다. 아이들 픽업, 저녁 식사, 목욕, 잠자리로 이어지는 루틴에서 조금만 어긋나도 짜증이 났다. 예정에 없던 회식과 늦은 퇴근은 싸움의 빌미가 됐다. 결국 얼마 전 남편은 직장을 옮겼다. 유연 근무가 가능한 곳이었다. 아침 일(등원 준비)과 저녁 일(목욕과 잠자리) 나눠 하다 보니 갈등이 줄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여성을 일터로 보낼까 고민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남성을 집으로 보낼까 고민해야 할 때다.”

우리 부부가 이런 고민을 풀어내고 있을 때, 이재명 대선 후보의 이 말이 귀에 들어왔다. 격하게 공감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재작년 육아휴직을 한 남성은 3만8500명(전체 16만9300명)을 기록했다. 10명 중 2명이 아빠란 얘기다. 10년 전(1960명)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결과지만, 여전히 여성 비율이 압도적이다.

제도가 있는데도 워킹대디가 흔치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눈치 때문이다. 몇 해 전 만났던 한 시중은행 임원은 “같은 연차에, 비슷한 역량을 보이는 남자 직원 둘이 있어요. 한 사람은 육아휴직을 썼고, 한 사람은 안 썼습니다. 임원으로서 누구에게 인사 점수를 더 줘야 할까요”라고 했다. 당시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여성 임원들의 인터뷰 기사를 쓸 때 수식어로 워킹맘을 습관처럼 달았다. 그보다 높은 자리에 오른 남자 임원에게는 ‘워킹대디’를 쓰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나 자신도 남녀의 역할을 가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그 임원에게 “나머지 한 명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셔야죠”라고 답하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

인식을 바꾸는 일은 어렵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변화를 기대하기엔, 우리 앞에 놓인 현실(합계 출산율은 0.82)이 너무 아찔하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우린 알고 있다. 문제는 해결 방식이다. 이제 제도적 넛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좀 더 강제적이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유퀴즈’에 나온 워킹대디를 볼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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