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부유한 정부, 가난한 국민

입력 2022-01-05 05:00 수정 2022-01-0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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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영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새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재정·통화 정책 기조로 가계부채, 불평등 확대, 기후변화 등 한국 경제의 취약점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소상공인 손실 보상과 방역 등 확장적 재정에, 이 총재는 물가를 억제하고 가계부채를 낮추기 위한 추가 기준금리 인상에 방점을 두었다. 올해 정부 예산은 607조7000억 원이다. 소상공인 손실 보상 규모는 2조2000억 원 정도에 그치고 있어 부총리의 신년 각오가 무색하다. 또한 1.5∼1.75%로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되고 있기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상승에 따라 대출 연체율 증가가 예측된다.

경제 전문가들은 향후 5년간 우리 경제에 위협이 될 요인으로 ‘가계부채 증가’를 꼽고 있다. 최근 부동산 가격의 상승, 코로나19 대유행 등 경제여건 악화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확대되면서 지난해 말 기준 가계부채는 1년 전보다 7.2% 증가한 1628조 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가구의 금융부채는 최근 3년간 18.1% 증가하였지만 가구의 평균 연소득은 8.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즉 가구의 금융부채 증가율이 연소득 증가율을 상회함에 따라 소득 증가를 넘어서는 부채 증가로 인해 가계 부담이 심화되고 있다.

나라살림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정부부채는 5.5%, 가계부채는 8.6%, 기업부채는 9.3% 증가했다. 이에 비해 미국, 일본, 영국, 독일의 가계부채는 각각 4.8%, 5.0%, 6.2%, 4.5%로 소폭 증가하였다. 반면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의 정부부채가 최소 11.7%에서 최대 29.0%까지 증가한 데 비해 한국의 정부부채는 5.5% 증가하였다. 국제결제은행(BIS) 통계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미국 78.0%, 영국 88.9%, 유로지역 61.5%, 캐나다 110.4%, 일본 64.3%, 중국 61.1%이며, 우리나라는 101.1%로 주요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의 2021년 경제성장률을 4.0%로 전망하고 있다. 2020년과 2021년 평균성장률로 본다면 우리나라는 1.6%로 주요 20개국(G20) 내 선진국 10개 국가 중 가장 높았다. 또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지역내총생산(명목)은 총 1936조 원으로, 전년보다 9조 원(0.4%) 증가하였다. 코로나19 위기에서 경제성장률, 지역내총생산 모두 증가하여 정부의 살림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정부부채에 비해 가계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하여 국민 개개인의 살림은 궁핍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기재부는 국민들에게 돈을 푸는 데 인색하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국가들이 경기부양책을 시행하고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를 펴는 것과 다른 모습이다. 2021년 전 세계 국가의 코로나19 관련 재정정책의 규모는 16조 달러에 달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관련 GDP 대비 재정지출 비중은 일본이 44.2%로 높은 편이고 독일(38.8%), 영국(32.4%), 미국(27.9%) 순이며, 우리나라의 경우 14.7%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세계 주요국은 대체로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계층의 대출상환을 유예하고 취약계층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은 근로소득 감소에 코로나19 경기부양법안(CARES ACT)으로 소비자 보호 및 연체 방지를 위해 대출상환을 유예하고, 실업급여를 확대(매주 600달러)하는 등 소득지원 방안을 마련하였다. 영국은 재정회복력이 낮은 사람(과다한 부채가 있거나 저축 수준이 낮은 사람)이 1070만 명에서 1420만 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하자 먼저 코로나19 일자리 유지 계획(Coronavirus job Retention Scheme)을 시행했다. 고용주가 해고된 근로자 임금의 80%를 지불하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경제취약계층에 지속적으로 식량을 제공할 수 있도록 1600만 파운드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였다. 주택담보대출의 상환도 유예하였다. 특히 미국의 실업급여 확대, 영국의 경제취약계층 대상 기금 조성 등은 적극적인 공적 부조 대책이다.

주요국들은 정부부채가 늘어나더라도 가계 파산을 막기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국가부채 증가가 곧 국가적 위기라는 공식으로 ‘국가부도의 날 IMF’ 공포가 있는 국민들에게 보수적 재정집행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더해 기준금리 인상과 DSR 규제 등 강력한 대출 규제까지 예고하였다. 대출 규제는 일시적으로 가계부채로 인한 위험성을 낮추겠지만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비중이 82.3%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근본적인 가계부채 억제 방안이 아니다. 금리 인상과 대출규모 축소는 결과적으로 대출자들을 이중고에 시달리게 할 가능성이 크다.

기재부가 재정으로 취약계층을 감싸고 한은은 금리를 올려 가계부채 증가, 물가상승을 억제하는 ‘폴리시믹스(Policy mix)’를 시도하려면 추경을 통해 코로나 피해가 극심한 소상공인들에게 ‘보상다운 보상’을 하고, 지원 절차는 ‘선보상 후정산’으로 신속하고 간소하게 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국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가적인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 금리인상으로 인한 대출자 이중고 문제 해결, 저자산 계층의 부채상환 부담 감소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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