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젊은 선도국가, 늙어가는 국민

입력 2022-01-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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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서강대학교 사회복지전공 교수

1980년. 필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이다. 10살 아래의 기억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선명히 떠오르던 장면은 또래 아이들로 가득 찼던 운동장이다. 서울 변두리의 초등학교 1학년은 30반까지 있었고, 으레 그러하듯 4학년까지 오전반과 오후반이 나뉘었다. 한 학급의 아이들이 대략 90명에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한다(1학년 2학기 때 잠시 전학을 갔던 서울 반포의 초등학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학급당 80명이 넘는 아이들로 바글거렸다). 오전반과 오후반이 교대되는 4교시 쉬는 시간의 1학년 복도는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그 10분 동안 15개 학급 1350명의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고자 했고, 같은 수의 아이들이 집에 가기 위해 가방을 둘러메고 교실 밖을 나왔다. 좌측통행과 질서를 외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는 수천 명 아이들이 가득한 복도의 소음에 묻혔다. 만원 지하철의 혼잡도보다 더한 공간에서 그 아이들은 평생을 따라다닐 경쟁의 실체를 체험했으리라.

교수가 되어 인구구조를 강의할 때면 이때의 기억을 예외 없이 소환한다. 당시 1학년이 대략 2500명 이상, 베이비붐 세대의 끝자락인 고학년들은 아마 더 많았을 테니 어림잡아도 초등학교 한 곳의 학생이 1만5000명은 훨씬 넘었을 것이었다. 물론 1980년대 초등학교가 곳곳에 신설되면서 이러한 과밀학급 문제는 조금씩 해소되었다. 그럼에도 어느 골목이든 아이들의 노는 소리는 가득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2016년 3월. 아들 녀석의 중학교 입학식을 맞아 정말 오랜만에 동네 학교에 가보았다. 학교 역사를 보니 1989년 무렵 개교 당시에는 한 학년이 15학급에 700∼800명을 헤아렸다는데, 막 입학한 2003년생 아이들은 7개 학급 190명 정도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학교 교실의 상당수는 그 쓰임을 찾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었다. 합계출산율 1.3 내외에 약 50만 명이 태어났던 2003년생들의 학교였다. 시간이 더 지나 출산율 0.8을 기록한 2021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갈 2035년 무렵엔 서울 곳곳의 동네 학교들이 없어지거나 통폐합될 것이다.

현재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기 저출산의 충격은 10∼20년 뒤 대한민국의 모든 곳에 영향을 줄 것이다. 1980년 학교 복도를 가득 채웠던 아이들이 벌써 우리 나이로 50세가 되었으니, 국민이 늙어가는 고령화 현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터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2070년 대한민국의 인구는 3765만,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 46%에 중위연령이 62세에 달하게 된다. 나이 순서로 전 국민을 한 줄로 세울 때 가장 가운데 있는 사람의 나이가 62세라는 말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이라면 우리 경제가 버텨나갈 수 있을 것이며 연금, 의료, 장기요양과 같은 복지체계가 유지될 수 있을까?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사상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한 2021년, 대한민국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선진국으로 공인되었다. 젊은 선진국이다. 지난 12월 미국에서 귀국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재명 후보 대선캠프에 합류하면서 젊은 선도국가로서의 도약을 힘차게 외친 바 있다. 반도체, 전기차, 바이오, 정보기술(IT)플랫폼, 문화콘텐츠 분야의 세계 1등 경쟁력과 판교를 중심으로 한 벤처기업 열풍은 ‘젊은 선도국가론’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늙은 국민에 젊은 국가가 논리적으로 가능한가? 지금은 가능하다 한들, 미래에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저출산 극복은 국력을 총동원하여 풀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대선을 앞둔 새해 초, 각 진영의 대선후보들은 늙어가는 국민들에게 어떠한 미래의 모습을 보여줄지 숙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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