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위기] ① 강경 대응 천명했지만...러시아 두고 속 타는 유럽

미국, 러시아와 제네바 담판, 신냉전 여부 가를 분수령
러시아 우크라 침공 시 대북 제재 수준의 강력 대응 경고
유럽, 대러시아 제재 불똥 튈까 우려
러시아 에너지 의존, 당장 해결하기 힘들어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러시아와 서방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냉전 이후 최대 갈등 상황에 놓였다. 미국은 스위스 제네바 담판을 앞두고 강력 제재를 경고하며 러시아를 압박했다. 유럽의 속내는 복잡하다. 러시아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면서도 러시아 제재가 몰고 올 경제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1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제네바 담판에 나선다. CNN은 소련 붕괴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러시아 간 가장 중대하고 결정적인 만남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진격을 막고 평화를 유지할지, 미국의 강력한 대(對)러시아 제재로 신냉전 소용돌이에 빠져들지를 가르는 분수령이라는 이유에서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의 동진을 경계하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친(親) 유럽연합(EU) 성향을 드러내자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한 상태다.

미국은 러시아와 담판을 앞두고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꺼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9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두 가지 길이 있다”며 “그중 하나가 외교를 통한 긴장 완화”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병력을 철수하고 공격을 단념하면 회담에 진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러시아가 끝내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하면 강력한 제재를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북한·쿠바·이란 제재 수준의 고강도 수출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 금융거래에서 러시아 기관을 차단하고, 항공·반도체·컴퓨터·스마트폰·태블릿·TV 등 첨단기술과 전자제품 수출을 통제한다는 설명이다.

▲우크라이나 병사 한 명이 8일(현지시간)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과 대치하는 도네츠크 지역 전선 참호에서 망원경으로 전방을 감시하고 있다. 도네츠크/AP연합뉴스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유럽은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속내는 복잡하다. 러시아 고강도 제재 불똥이 유럽 경제로 튈 우려가 있어서다. 당장 천연가스 공급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유럽은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 여파로 치솟은 천연가스 가격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달 21일 이후 19일째 야말-유럽 파이프라인을 걸어 잠갔다. 유럽 내 천연가스 전체 공급의 40%를 차지하는 통로가 막히자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달 유럽 천연가스 가격 지표인 네덜란드 TTF 거래소의 천연가스 선물가격은 메가와트시(MWh) 당 182.3유로로 최고점을 찍었다. 유럽은 러시아가 미국의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천연가스 공급을 더 조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독일이 미국 제재에 얼마나 동조할지도 변수다. EU가 미국과 함께 러시아 제재에 나설 경우 27개 회원국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다. 독일은 자국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가동이 간절하다. 가스관 완공 후 가까스로 미국의 허용을 받아냈지만 여전히 가동을 못한 채 EU 규제 당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EU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이 당장 해결하기 힘든 문제란 점도 유럽의 고민을 깊게 한다. 티에리 브르통 EU 내부시장 담당 집행위원은 유럽의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2050년까지 신규 원전에 5000억 유로(약 680조 원) 투자가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미국의 고강도 제재를 피해 외교적 해법을 찾아야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병력 철수 요구에 맞서 러시아는 나토의 동진 중단과 동유럽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어서다. 미국은 이번 회담 테이블에 유럽 내 미사일 배치와 군사훈련 범위까지 올려놓는다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물론 유럽이 지역 내 미사일 배치와 군사훈련 축소를 얼마나 수용할지도 난관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10일 담판에 이어 12일 러시아와 나토, 13일 러시아와 범유럽 안보협의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회담이 줄줄이 예정된 가운데 서방과 러시아가 신냉전의 파국을 막을 묘수를 찾아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