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포퓰리즘은 유죄인가?

입력 2022-01-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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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새해 들어와 나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얼마 남지 않은 20대 대통령 선거로 후보들의 득표 경쟁이 과열되면서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것을 가장 크게 걱정한다. 각 후보 진영에서 매일같이 쏟아지는 선심성 공약은 그 창의성에 감탄할 정도로 놀랍게 진화하고 있다.

초기에는 기본소득에서 출발해 전국민 재난지원금으로 넘어갔다가 부동산 세금 감면에서 정점을 찍고 이제는 탈모약과 가발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안까지 확대되고 있다. 군 장병에게 200만 원 월급을 주는 공약은 서로 자기네가 원조라고 다투기까지 한다. 돈 풀기 경쟁이 고조되며 50조 원, 100조 원이 쉽게 거론된다.

여야 선거대책본부는 국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책의 개발은 뒷전으로 미루고 당장 인기를 끌 수 있는 공약을 찾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과 같이 국가적으로 중요하지만 인기 없는 정책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표만 계산하는 정치공학이 판을 치며 표(票)퓰리즘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포퓰리즘을 걱정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무차별적으로 퍼주기식이라 막대한 재정지출을 수반한다. 전 국민을 촘촘하게 넓고 두텁도록 지원하는 것은 화수분이 아닌 재정이 감당할 수 없다. 과도한 재정지출은 증세나 국가 채무로 귀결되어 국민의 부담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국가가 가부장적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면 국민의 근로의욕이 낮아지고 시장의 민간 기능이 위축되어 경제의 활력도 저하된다. 결국, 성장잠재력이 감소하여 국가경제와 국민소득도 성장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당장에는 달콤하지만,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와 사회를 좀먹게 될 포퓰리즘이 대선판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포퓰리즘은 오늘날에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 포퓰리즘의 뿌리는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바이러스와 같이 우리 주변에 머물다 허술한 틈이 보이면 치명적인 감염병으로 확산하여 창궐한다. 바이러스 변종처럼 포퓰리즘도 변신하고 변천한다.

규제도 일종의 포퓰리즘이다. 평등을 앞세워 중고등학교 교육의 평준화를 강요하거나 대학의 등록금을 동결하는 것도 포퓰리즘에 속한다. 온라인 전자상거래 시대에 생존을 위협받는 대형마트를 계속 규제하는 것도 포퓰리즘이다.

가장 진화한 형태의 포퓰리즘은 여론정치라 할 수 있다. 원전 폐쇄나 종부세 한도와 같이 전문적 정책을 결정할 때에도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여론정치의 대표적 사례이다.

포퓰리즘(populism)이란 말 그대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은 ‘샴쌍둥이’처럼 맞붙어 있다. 역사적으로 국민이 권력을 선택하는 정치제도 하에서 포퓰리즘은 늘 존재해 왔다. 로마 시대부터 민주주의의 결정판인 미국에 이르기까지 포퓰리즘은 정치의 중심에 놓여 있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에서 대중의 인기를 구하는 포퓰리즘을 대놓고 매도할 것이 아니다. 그러니 포퓰리즘의 원흉으로 정치인을 욕하지 말라. 포퓰리즘이 정치적으로 대유행하는 증상의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며 복잡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여러 차례의 경제위기를 거치고 양극화와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가 변화하는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한다. 이전에는 경제가 성장하면 소득이 증대되어 국민 모두가 잘 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가 부유해지는 것이 국민 개개인의 삶과 괴리되는 현상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잘되는 것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하는 질문이 던져진다.

우리 시대에서는 국가주의보다 개인주의가 더 강하다. 국민이 양보하고 희생하여 국가가 부강해지고 미래 세대가 행복해진다는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앞서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느냐?’를 묻는다. 포퓰리즘을 우려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상충될 경우 무엇을 택하겠는가? 미래 세대를 위해 자신의 연금을 줄이라고 하면 선뜻 받아들일 것인가?

현재 포퓰리즘이 창궐하는 것을 정치권만의 책임으로 모는 것은 편협하다. 누가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인을 선택하였는가?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에 빠지게 한 것은 국민의 선택이며 그 결과도 국민의 책임이다. 마찬가지로 과도한 포퓰리즘을 억제하고 선거를 정책경쟁으로 이끄는 것도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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